반도체·배터리에 이제 전선까지···연이은 기술 유출에 '골머리' [줌컴퍼니]

노우리 기자 2024. 6.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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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의 해저케이블. 사진제공=LS전선
[서울경제]

우리나라 주요 산업 기술을 향한 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품목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 전선 등까지 유출대상 산업군도 확대되고 있다. 내부 직원이 핵심기술을 빼돌리는가 하면 공장을 준공한 건축사가 기술유출 혐의를 받는 등 수법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전선업계 1위 업체인 LS(006260)전선은 경쟁업체인 대한전선과 기술유출 갈등을 겪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 11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대한전선 해저케이블 공장 현장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을 전담해온 설계업체 가운건축이 고전압 해저 케이블 기술에 대한 정보를 빼돌려 대한전선 측에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이 업체는 이달 초 완공된 대한전선의 케이블 1공장을 작업했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기술 경쟁사 유출과 관련한 설명자료를 통해 “약 20년간 해저케이블 공장과 R&D 등에 약 1조 원을 투자해왔다”며 “특히 500킬로볼트(kV)급 HVDC 해저케이블의 경우 국가핵심기술로서 제조 기술 및 설비 관련 사항들이 다른 국가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와 국민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저케이블 공장은 일반 공장과 달리 고중량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직 연합기와 턴테이블 등의 특수 설비가 필수적이다. 도로로 케이블을 옮길 수 없고 선박으로 이송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항구까지 이송하는 방법에 대한 설계도 보안 사항에 해당한다. LS전선은 이러한 해저케이블 공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설계도면이 새나가면 기술 유출로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한전선은 “공정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다수의 건축 설계업체 중 해당 업체를 선정했다”며 “해당 업체는 케이블 설비 및 제조 기술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당사 해저케이블 1공장에 설치한 수직연합기, 턴테이블, 갱웨이 등의 해저케이블 생산 설비는 국내외의 전문 업체를 통해 제작 및 설치했다”는 입장이다.

산업계에선 이번 사건이 그간 기술 유출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던 전선업계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상 중국 등 경쟁국이 인력을 빼내가는 형태의 기술 유출과 다르게 국내 업체 간의 갈등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만큼 기술 경쟁의 전장이 확대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전압 해저케이블 기술은 최근 늘어난 전기수요에 따라 고부가 가치 기술로 떠올랐다.

연합뉴스

최근 몇 달 사이 국내 반도체 양대 축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에서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연달아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던 중국 국적 직원이 반도체 불량률을 낮추는 핵심 기술을 중국 화웨이로 빼돌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A 씨는 반도체 설계상의 불량을 분석하는 부서에서 줄곧 일하다가 2022년 6월께 높은 연봉을 받고 화웨이로 이직했다. 문제는 퇴사 직전 핵심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한 자료를 A4용지 3000여 장 출력한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상무와 하이닉스 반도체 부사장을 지낸 최모 씨가 삼성전자 화성공장 16라인 기초공정데이터와 공정 배치도, 설계도면 등을 중국 신생 반도체 기업으로 넘기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중국 시안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삼성전자를 그대로 본뜬 반도체 공장 설립을 계획하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반복되는 기술 유출 사건에도 개선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은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검찰청 '기술유출 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15~2020년 산업기밀 유출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835건 중 집행유예 301건(36%), 무죄 191건(22.87%) 등이 절반을 넘는다.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글로벌 단위로 사업을 펼치는 기업 특성상 국내는 물론 해외 사업장부터 계열사, 협력업체까지 유출 경로가 무한하다. 이직을 시도하는 전직 임직원의 경우 유출이 의심된다 해도 소재 파악 자체가 어렵다.

그렇게 기술유출 적기를 놓친 사이 우리 기업들의 피해 규모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8년 이후 5년간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93건에 달한다. 피해액만 25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우리 기자 we122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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