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적이 없노라"

김효성 2024. 6.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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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수 법사의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1' [바른법연구원]

[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절체절명의 위기극복,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적이 없노라"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 1, 2, 3>의 세 번째 순서입니다.

우리는 가정과 사무실, 공사현장 등 일상에서 크고 작은 재앙과 위기상황을 겪습니다.

병의 고통, 가난,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와 상사, 부부간 불화, 직장과 학교에서 왕따, 실직위기, 징계 등 무수히 많은 경천을 당하고 있습니다.

쉽사리 주위에 도움을 청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이지 막막합니다.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김원수 법사의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에서 벼랑 끝에 서게 될 경우 어떻게 이런 위기를 벗어나서 온전한 자기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지, 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 반지를 돌려받은 이야기
- "전생의 죄업을 참회하여 재앙을 소멸한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친구(ROTC동기)가 제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낄 수 있는 예쁜 반지를 빌려주었습니다.

반지를 끼고 부대에 와서 자랑했더니, 저보다 한 계급 위의 사람이 반지를 하루만 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내 것은 아니지만 하루쯤 빌려주는 거야 뭐 어때?'하며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하루가 지나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돌려달라고 해도 빙글빙글 웃으면서 전혀 돌려줄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반지를 가져가서 나한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 돌려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흔히 욕심 많은 성격, 아래 계급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특유한 사고방식 등 원인을 현실적인 문제에서 찾습니다.

그 사람은 본래 남의 것을 잘 떼어먹는 것이 특징이라는 식으로 흔히 해석합니다.

그러나 제가 공부하면서, 반지를 돌려주지 않은 것이 그이의 성격적인 특징이나 기질 때문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내가 전생에 그의 반지를 슬쩍 떼어먹고 안 돌려줬던 적이 있었고, 그이는 당했던 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한으로 말미암아 제게서 반지를 가져가 돌려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금생은 아니고 몇 생 전인지는 모르지만 전생에 나한테 당했다는 기억, 원한으로 내 반지를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미륵존여래불해서 되돌려 주게 되었는가?

보통 사람은 반지를 돌려주지 않았을 때 달라고 하거나 싸우거나 심지어 소송까지 합니다.

금강경을 하는 불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지를 돌려주지 않은 것은 그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전생에 내가 그이한테 했던 죄업 때문입니다.

내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 반지를 스스로 가져오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는 그것을 전혀 몰랐고 전생이 있는지도 확실히 몰랐습니다.

인과응보를 믿기는 했어도 털끝만 한 전생의 죄업까지도 금생에 엄밀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공부하며 인과응보를 하나하나 믿게 되면서, 억울한 일은 사소한 일까지도 그 원인이 전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이가 반지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는 내가 전생에 그이한테 그만큼 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생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면 반지를 가져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때는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해서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내 죄업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내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죄지었다는 생각을 소멸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한을 푸는 길입니다.

한을 풀어야 그이가 반지를 저절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백성욱 박사님께서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숫달타 장자가 부리나케 부처님을 찾아와서 여쭈었습니다.

숫달타 장자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을 건설할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며느리가 지금 해산하려고 하는데 아기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하고, 며느리와 아기 둘 다 죽을 지경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마음이 불안하고 힘듭니다. 부처님, 이럴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부처님께서 주장자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기를 해산할 때 아기 머리에 주장자를 대고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적이 없노라'를 세 번 하라"

숫달타 장자는 부처님 말씀대로 하였고 며느리는 기적적으로 순산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때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일이 없노라'를 해보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시범을 한 번 보이신 것입니다.

숫달타 장자의 며느리가 순산했듯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법문도 하시고 시범도 보이셨던 것입니다.

▲"재앙이 곧 축복 번뇌가 곧 보리" - 마쓰시타 정경숙 정문

△ 위기를 극복하는 명약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일이 없노라"
'나는 죄지은 적이 없노라'하는 것은 부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중생들은 다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죄지은 일이 없노라'하는 동시에 나 역시 부처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짓지 않았다고 누구한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선적인 고해성사가 아닙니다.

고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부처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시겁으로 죄지은 일이 없노라"

"나는 무시겁으로 음란한 생각을 한 적이 없노라"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일이 없노라"

반드시 '없노라' 해야 합니다.

'없습니다' 하고 존칭을 써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없노라'가 실감이 안 나고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요.

그러나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본래 전지전능하다는 위력을 망각한 것이지, 양심도 모범도 아닙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나는 무시겁으로 살생한 일이 없노라'라고 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특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명약이라는 것을 근래 와서 많이 실감합니다.

미친 척하고 하루에 정성껏 100번씩이라도 해보길 바랍니다.

※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1> 김원수 지음(바른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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