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가 계속 급등하고 있다고요?

김원장 2024. 6. 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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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자주 우리 눈을 가린다. 잘못된 통계의 생산과 해석은 정책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삶을 바꾼다. 통계를 볼 때는 수많은 변수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2024년 1월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매대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 욕을 하면 더 들기가 쉬워진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한번 해보기를 권합니다. 진짜 가볍게 느껴집니다). 영국 킬 대학(University of Keele)의 실험을 바탕으로 했는데, 실험에 참여한 52명은 욕설을 하면서 무거운 것을 들고, 29명은 욕설을 하지 않고 무거운 것을 들어서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표본이 너무 적고 또 연구진은 두 실험집단을 바꿔서 실험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 결과가 과학적이었다면 우리는 TV 중계를 볼 때마다 욕설을 하면서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들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엉터리 통계에 포위돼 있습니다. 통계 제작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통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합니다. 또 누군가는 통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합니다.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간 결혼은 해마다 늘어납니다. 그런데 통계청 통계를 보니 한국 여성과 베트남 남성 간 결혼도 급증세입니다. 10년 만에 283건에서 792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국 여성이 베트남 남성에게 ‘급호감’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트남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은 95%(752건)가 재혼입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 여성이 베트남 남성과 재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한 해 30만6000쌍이 결혼하는데 같은 해 14만5000쌍이 이혼한다는 자료가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기자들은 결혼 부부 47.4%가 이혼한다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결혼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 ‘한국 이혼율 세계 최고 수준’ 같은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해 이혼한 부부 수를 같은 해 결혼한 부부의 수로 나누면서 생긴 착각입니다. 사실은 그해 이혼한 부부 수를 국내 총 혼인 부부 수로 나눠야 합니다. 당시 총 혼인 부부가 1101만 쌍이고 그해 이혼한 부부는 14만5000쌍이었습니다. 그러니 1.3% 정도입니다. 보통은 우리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이혼율’을 씁니다. 2023년 기준 조이혼율은 1.8%입니다.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엉터리 기사가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줬을까요.

눈치 채셨겠지만 통계 왜곡의 주인공은 단연 기자들입니다. 몇 해 전 일부 독감백신이 보관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습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어르신들 사이에서 독감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러자 ‘83세 노인, 백신접종 후 또 사망’ 같은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불안감은 더 커졌고 접종을 포기하는 어르신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얼마 안 돼 사망한 110명 중 독감접종과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0’건이었습니다. 같은 해 국내에서 사망한 65세 이상 어르신은 총 23만여 명입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독감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그럼 ‘지난해 노인 10만2000여 명, 독감백신 맞고 사망’이라는 표현은 맞을까요.

상관관계만 있을 뿐 인과관계가 없는 엉터리 통계 해석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자 거의 매일 포털에 등장했습니다. ‘술 담배 안 하는 아빠, 모더나 백신 맞더니 위암 재발.’ 이 기사가 맞다면 ‘프로야구 관람 후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이 프로축구 관람 후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보다 3배나 높아!’ 기사는 어떠세요? 국내 프로야구 관중은 한 해 800만명, 프로축구 관중은 한 해 300만명입니다.

숫자는 이렇게 우리 눈을 가립니다. 문제는 잘못된 통계의 생산과 해석이 정책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삶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조간신문을 보니 ‘또 전세대란, 전셋값 52주째 상승’이라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전세 가격은 진짜 1년째 급등하고 있을까. 실제 지난해 5월과 비교해서 1년간 서울의 전세가격지수(한국부동산원)는 5.19%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이전 1년 동안 전세 가격은 19.0% 하락했습니다. 그러니 ‘단기간에 많이 내린 전세 가격이 다시 오름세로 전환됐다’는 정도의 표현이 맞습니다. 그럼 실제 전세가는 장기적으로 얼마나 올랐을까요. 우리는 이 통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시사IN 이명익

통계에 투영된 인간의 마음

정부(한국부동산원)가 발표하는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6월=100’으로 봤을 때 지난 3월은 ‘88.8’입니다. 그러니 지금 전세가는 2021년보다 낮습니다. 정부 통계가 맞다면 2015년과 2019년에도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88’ 수준이었습니다. 아파트 전세 가격은 1년 동안 꾸준히 올랐지만 2015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급등하는 전세 가격, 아파트 분양시장까지 들썩’이라는 기사를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이렇게 언론이 ‘서울 송파구의 전세 가격이 지난달 3000만원 또 올랐어요’라고 보도하면, 오늘 전세를 내놓은 송파구에 사는 집주인은 자연스럽게 전세 가격을 조금 더 올려서 내놓을 거라는 점입니다. 전세는 이렇게 의도치 않은 일시적 담합이 가능한 시장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2021년 6월=100’으로 봤을 때 2009년 의 전세가격지수는 ‘59’ 수준, 10년 뒤인 2019년의 전세가격지수는 ‘88’ 수준입니다. 10년간 전셋가는 약 1.5배 올랐습니다. 그런데 2009년의 전세대출 가중평균 이자율(한국은행)은 4.5%입니다. 만약 전세보증금이 5억9000만원인 아파트 세입자의 이자 부담은 연 2655만원입니다. 10년 후 전세 가격은 8억8000만원으로 올랐지만 2019년 전세대출 가중평균 이자율은 2.9%입니다. 연 이자부담은 2552만원으로 오히려 100만원 이상 줄었습니다. 전세가는 높아졌지만 이 기간 세입자가 부담하는 돈의 무게는 감소했습니다. 사실은 당시 낮은 이자율이 전세가를 밀어 올린 것입니다. 통계는 이렇게 수많은 변수를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분기에 1.3%나 깜짝 성장했습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더 높게 수정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4.9%, 지난해에는 2.5%가 또 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갑은 왜 이렇게 가벼울까요.

2022년에는 물가가 5.1%, 지난해에는 3.6% 올랐습니다. 그러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며칠 전 나온 지난 1분기 명목임금은 –1.1%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3%나 오른 소비자물가를 반영했더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3.9%나 떨어졌습니다(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06년 정부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가장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생선을 사려다 다시 내려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통계를 정확하게 알려면 숫자를 뒤집어보고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봐야 합니다.

통계를 조립하는 숫자에는 인간의 마음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코끼리의 평균수명이나 라면의 끓는점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지만, 정작 이번 주말 동물원에 몇 명이 찾아올 것인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시장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동전을 여덟 번 던졌는데 일곱 번 앞면이 나오면 우리는 또 앞면이 나올 것이라고 믿기 쉽습니다(증권사는 이걸로 먹고삽니다). 하지만 동전은 앞에 던진 결과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마음은 늘 시장의 예측을 바꿔놓습니다.

설령 과학적으로 조립된 통계도 우리는 마음대로 해석해버립니다. 크다는 것은 무엇이고 중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태양의 지름은 지구의 109배입니다. 태양이 더 클까요, 전쟁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간절함이 더 클까요. 아인슈타인은 ‘중요한 것은 측정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있다고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8명이 죽은 사건은 한 명이 죽은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일까요. 그 한 명이 나의 가족이면 8000명이 죽은 사건보다 더 큰일이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컴퓨터와 다르게 숫자를 인식합니다. 통계는 숫자로 조합됩니다. 모든 합리적 결정은 과학적인 통계의 조합이지만 우리는 사실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습니다.

김원장 (경제평론가·전 KBS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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