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손목에 붕대 감고 영취산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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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 든든히 아침을 챙겨먹고 집을 나섰다.
나는 예정되어 있던 영취산 산행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여수에 위치한 영취산은 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 중 하나다.
570여 개의 침목계단을 오르고 나니, 영취산 진례봉 산이마에 오르는 마지막 데크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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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 든든히 아침을 챙겨먹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도착한 용산역. 오전 7시 10분 여수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98좌 산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2주 전, 등을 달다 의자가 쓰러져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손목에 골절상을 입어 후배가 운영하는 정형외과에서 반깁스를 했다. 하지만 부상은 산행에 대한 나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예정되어 있던 영취산 산행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3시간 넘게 걸려 여수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흥국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수에 위치한 영취산은 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 중 하나다. 축구장 140개 정도의 너비를 자랑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진달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고려 후기의 승려 지눌이 창건했다는 사찰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모인 호국 승려 300여 명이 수군으로 참여해 이순신 장군을 돕고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흥국사 일주문을 지나 봉우재를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완만한 돌계단길이 이어졌다. 108 돌탑공원의 돌탑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도대체 저 돌탑들을 쌓은 이는 무엇을 소원하며 저리도 무거운 돌을 옮겨 쌓았을까? 이곳을 벗어나기 전, 부디 그가 소원을 성취했기를 바라며 작은 소원탑에 돌 하나 올려놓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니 마침내 드넓은 봉우재 고갯마루가 보였다. 고개엔 산벚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고개 너머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산벚나무 꽃잎이 비처럼 우수수 흩날리기도 했다.
도솔암 오르는 이정표 아래에 앉아 과거 이곳을 가득 메운 결기에 찬 승군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슬프고 애틋한 진달래는 이미 지고 없었지만, 대신 산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산객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내려오는 한 산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니 "아이고~ 고되지요~? 조금만 힘내세요!"라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받아줬다. 따뜻한 산객의 미소에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570여 개의 침목계단을 오르고 나니, 영취산 진례봉 산이마에 오르는 마지막 데크길이 나타났다.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올랐다. 잠깐 멈추어 뒤돌아보니 한껏 생기 돋은 초록빛 멋진 조망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정상까지 200여 m를 다시 천천히 올랐다. 12시 30분 드디어 영취산 진례봉 정상에 섰다.
이곳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유산업단지 공장들이 내려다보였다. 묘도대교와 광양만 바다도 시원스레 조망됐다. 정상석 앞에서 정상 인증 사진을 찍고, 자리에 앉아 간식으로 챙겨온 크림빵과 귤, 이온음료를 마셨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흥국사로 하산하는 길. 비록 시기가 늦어 진달래는 조금밖에 보지 못했지만, 진달래 못지않게 근사한 산벚나무꽃을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내려오는 길엔 흥국사에 들러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원통전 관음보살께 몸이 아픈 중생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미리 연락드린 택시 기사님의 차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으로 향했다. 차에선 노래 '여수 밤바다'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노래를 들으며 이번에 끝마친 98좌의 의미도 되새겨봤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100좌에 오르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른 영취산. 다친 손목에 반깁스를 하고 오른 터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몸을 실은 서울행 고속열차는 어느새 여수 밤바다를 뒤로하고, 어둠을 뚫고 쉼 없이 달려 나갔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됐던 바쁜 일정이 마침내 모두 끝났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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