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공인들' 기념비가 지키는 NMAA[이한빛의 미술관정원]
정원에 새로운 한국 작가 텅 빈 조형물 설치 눈길
[워싱턴=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작가는 우리에게 전복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거다. 과연 역사의 주인은 누구냐고” (캐롤 허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1923년 설립,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의 내셔널몰에 자리한 미술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앞 정원에 새로운 조형물이 들어섰다.
정확하게는 텅 빈 좌대다. 좌대 위에 인물상이 놓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다. 인물상은 좌대 아래 놓였다. 수백의 인물들이 좌대를 들어올리고 있는 것. 반전의 묘미가 있는 이 작품은 한국작가 서도호(62)의 ‘공인들(Public Figures)’다.
모든 것이 상징인 도시, 워싱턴 D.C.
질문에 대한 답은 먼저 워싱턴 D.C.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존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신생국가였던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나라를 세우면서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정당한 나라이며 국가로 위엄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특히 기념비(Monument)는 가장 쉽고 대중 접근성이 좋은 매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나 위인들, 전쟁에 나가 승리를 이끈 장군들, 참전한 용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기념비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D.C.에는 40개가 넘는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가히 ‘기념비의 도시’다.
기념비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지키고 있는 룰이다. 사람 키보다 높은 좌대가 있고 그 위에 인물상이 놓인다. 묘사하는 장면은 극적이고 장엄하다. 서도호의 작업은 이 같은 기념비의 공식을 완전 뒤집는다. 기려야 하는 특정 인물이 사라지는 대신 좌대 아래 무명(無名)씨들이 자리잡았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도 특정하기 어려운 그냥 ‘사람들’이다. 수 백 명에 달하는 이들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좌대를 받치고 있다.
서도호 작가는 “그 거대 서사의 중심축을 해체하고 기념비를 받드는 좌대 너머를 기리는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도호 기념비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질문
체이스 F. 로비슨 관장은 “서도호 작가의 이 기념비는 방문객들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우리가 기념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공인들(Public Figures'은 향후 100 년간 미술관이 학습과 성찰, 그리고 협력을 위한 자원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을 구체화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매년 워싱턴 D.C.의 내셔널몰을 방문하는 인원은 약 2500만명에 달한다. 내셔널몰 잔디밭을 정원 삼은 국립아시아미술관 앞, 서도호의 기념비는 앞으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작가도 스스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든 지역 그리고 동양의 미술과 서양의 미술 기관이 교차하는 장소에서 기념비에 관한 정론에 도전하는 작품을 선보인다는 사실에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작품이 놓인 잔디에도 작가는 의미를 부여한다. 일반 민중 혹은 억압받는 사람을 일컫는 ‘민초’를 상징한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백성’과 ‘풀’을 의미한다. 짓밟혀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민중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내셔널몰을 찾는 사람들은 서도호의 작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그 앞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할 것이다. 미술관 정원이 작품을 보고 난 뒤 여운을 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이라면, 이곳은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너는 동의하냐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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