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불길에 토해내는 괴성에도...너의 비극은 나와 상관없다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4. 6. 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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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 주의 :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부부의 삶은 무척이나 일상적이고, 때로는 부러울 만큼 평화롭다. 꽃이 만발한 너른 마당이 딸린 주택에 사는 이들 가족은 매일 아침 식량을 넉넉히 배급받고, 군복을 차려입은 남편은 말을 타고 출근한다. 독일어를 쓰는 인물까지 여럿 등장하면 이 작품의 배경이 나치 시절이고 주인공 가족은 부역자 중에서도 꽤 고위급일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5일 개봉해 관객과 평론가에게 두루 의미 있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야기다.

이 가족의 삶은 너무나 화목한 '중산층 가정'의 표본처럼 보인다. 자식을 다섯 명이나 낳은 부부는 햇살 좋은 오후면 아이들과 강가에 수영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누리고, 더운 여름날엔 푸릇한 집안 마당 위에 설치한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유대인 하녀 여러 명을 부리며 사는 아내(산드라 휠러)는 남편(크리스티안 프리에델)이 출근한 뒤 다른 집 아내들을 불러 모아 차담회를 열고, '유대인이 치약에 숨겨놓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았다'는 식의 수다를 하하호호 즐기기에 여념 없다.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그러나 관객은 이들의 일상을 도무지 즐길 수가 없다. 이 평화로운 장면들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기괴한 소음이 영화 내내 전방위적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 소음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이들 주택과 담장 하나를 두고 존재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매일 밤 담장 너머 그곳에선 유대인을 태워 죽이는 거대한 화로가 작동한다. 한쪽 화로가 열을 식히는 동안 다른 화로가 타오르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관리하는 장교가, 바로 주인공 남편이다. 이들이 삶을 누리던 그 '꽃 피고 마당 너른' 평화로운 주택은 나치가 유대인의 땅을 빼앗아 마련한, 수용소를 관리하는 장교에게 배분한 사택이었던 것이다.

매일 밤 창문 너머로는 사람을 소각하는 연기와 그로인한 섬광이 뿜어져 올라오고, 식사하는 거실과 잠드는 침실 사이로 도무지 그 상황을 명확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성이 파고들지만… 이들 부부는 자기들 일상을 영위하는 일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커 나가는 아이들 역시 그저 유년기의 한때를 즐길 뿐이다. 영화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작품을 보면 마치 한 독일 가족의 일상적인 삶과 고민을 다룬 성장드라마로 읽힐 정도다. 바로 그런 연출이 모든 비극적 역사를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 강한 불편감과 모순감을 선사한다.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관객이 느끼는 감정적 불편함의 절정은 이 부부에게 일종의 위기가 닥치는 순간이다. 바로 남편의 근무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발령 나는 일이다. 아내에게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다. 이 사택을 내가 얼마나 공들여 꾸려왔는데… 이 삶이 내가 얼마나 꿈꾸던 인생인데! 떠날 수 없다는 강경한 아내 뜻에 따라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이사하기로 한 남편은 그날 저녁 식탁에 앉은 자식들에게 침울한 목소리로 잠시간의 이별을 고한다. 이 순간 관객은 기어코 격앙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유대인이 불길에 휩싸이며 토해내는 괴성이 하염없이 들려오는 그 시간, 근무지 이동으로 인한 짧은 이별을 고하는 이들 가족의 저녁 식탁은 얼마나 한가로운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건 그간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수많은 작품과는 전혀 다른 시선에서 상황을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정해진 가치판단을 반복하는 대신, 나치 일원인 장교의 가정으로 들어가 그들 삶을 일상적으로 관찰한다. 지독한 악행에 부역했던 독일인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구성을 통해 보여질 때, 관객은 새롭고도 기묘한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이 클로즈업 샷을 거의 쓰지 않는 이유도 이런 효과를 배가하기 위함일 것이다. '토니 에드만', '추락의 해부'에서 월등한 연기력을 보여준 산드라 휠러가 아내 역을 맡은 만큼, 혹여라도 그의 출중한 표정 연기가 관객을 설득하는 일이 없도록 그저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관조하듯 촬영을 마친 셈이다. 이 거리감 덕에 관객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시대적 비극과 주인공 가족의 미시사를 견줘가며, 더 객관적이고 적확하게 비극을 대조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그 끝에 관객이 느끼고야 마는 최대의 아픔은, '너의 비극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누군가의 무심하고도 무지한 입장일 것이다. 남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내 가족과 일상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태도가 '시대정신'이 된다는 건, 개인적 일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세상의 이치를 주무르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타인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고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일상 수호에만 골몰할 때는 특히 그렇다. 세계 각지에서 비정한 국가간 전쟁이 발발하고, 각국에서는 무고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그 죽음의 진실마저 밝히기 어려운 시절, 감독은 오래전 나치 시대 이야기를 끌고 와 현시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너의 비극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정신이 함축된 시대가 우리 역사에 남길 가혹한 잔해는, 과연 무엇인가. 시대의 공기를 비판적으로 읽는 시선을 중요히 여기는 칸 영화제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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