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나는 확장현실·원작 소설로 들어간 듯…연극 '노인과 바다'

강주희 기자 2024. 6.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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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노인과 바다' 공연 장면. (사진=스튜디오블루 제공) 2024.06.15 photo@newsis.con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은 아무 말이 없다. 한평생 바다에서 생사고락을 다했지만 이제는 모두에게 퇴물 취급 받는 힘없는 노인이다. 동네에선 저주 받았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

하지만 노인은 개의치 않는다. 노인의 모든 것은 늙고 낡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내일이면 85일째야. 85는 행운의 숫자지" 노인은 밧줄을 노걸이 못에다가 끼워 묶고, 바다를 향해 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낡고 작은 배가 파도에 출렁였지만 노인은 멀리까지 나가볼 작정이다. 왠지 큰 물고기를 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따금 배 주변으로 다가오는 제비갈매기와 돌고래는 좋은 징조다. "두고 봐. 반드시 큰 물고기를 잡아서 돌아가겠어."

서울 대학로 소극장 스튜디오블루에서 공연 중인 연극 '노인과 바다'의 첫 장면은 이렇게 펼쳐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원작 소설을 연출가 하형주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최근 두 번째 앙코르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연극은 노인과 소년, 단 두 명이 이끄는 2인극이다. 작고 단출한 무대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채우면서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노인 역을 맡은 배우 남경읍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배에서 고독을 견디며 대어를 낚으려고 진력하는 노인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연기했다. 소년을 그리워하는 모습에선 홀로 있는 모습보다 더욱 절절함이 느껴졌다.

소년 역의 박준석은 노인의 유일한 꼬마 친구이자 노인을 관찰하는 화자를 소화하며 이야기를 견인했다. 기다림에 지친 노인이 바다에서 새와 대화하는 장면에선 무대 구석에서 리코더를 불며 보이지 않는 새를 연기했다.

[서울=뉴시스] 연극 '노인과 바다' 공연 장면. (사진=스튜디오블루 제공) 2024.06.15 photo@newsis.con *재판매 및 DB 금지


노인의 독백과 소년의 나레이션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는 관객을 극으로 끌어드리면서 재미를 더한다. 노인은 객석을 향해 썰렁한 개그를 하고 앞자리에 앉은 커플을 '암수 돌고래'라고 부르며 짖궂게 놀린다.. 장면과 상황에 걸맞은 애드리브로 객석의 웃음을 자아내면서 80분 동안 극에 쫀쫀한 탄력을 입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한 점이다. 무대를 3면으로 둘러싼 커다란 LED 스크린은 기존 연극 무대에서 표현하기 자연이나 시간의 흐름을 제약 없이 보여준다. 노인의 낡은 배에는 360도 회전하는 모션 시뮬레이션을 적용해 소극장 무대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 같은 무대 장치는 극 중 노인과 상어가 대결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객석으로 흘러넘칠 것 같은 거대한 바다와 급박하게 움직이는 노인의 작은 배, 청새치의 붉은 피가 번져가는 효과가 함께 맞물리면서 마치 원작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연극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와 함께 돌아온 노인이 돛대를 메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패배 당하기 쉬운 법이지. 난 절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노인의 애잔한 모습이 객석에 전달된다.

[서울=뉴시스] 강주희 기자 = 연극 '노인과 바다' 공연 무대. 2024.06.14 zooe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노인과 바다'를 연출한 하형주는 "노인이 상어 떼를 향해 작살을 던지는 장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라며 "관객을 바라보고 연기하는 배우의 시선을 LED 화면 속 청새치로 옮겨 마치 관객들이 작살을 던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XR 기술을 접목한 연출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배우들은 작품 속 영상이 만들어지는 동안 상상에 의존하며 두 달 동안 연습했다. 이후 공연장 무대에서 직접 영상을 보며 합을 맞춰나갔지만 100% 감정을 전달하는 건 힘들었다고 한다.

하 연출은 "미세한 감정 연기를 영상에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매번 다른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로 동일한 느낌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배우들의 노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말했다.

XR 기술 만큼 공을 들인 건 작품의 '메시지'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LED 화면에 사자의 얼굴이 나오는데 하 연출은 "노인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3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zooe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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