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 영화계 구원투수 '나야 나'…'하이재킹'vs'핸섬가이즈'vs'탈주' [김예랑의 영화랑]

김예랑 2024. 6. 1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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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성수기 앞두고 다양한 장르 영화 개봉
실화 모티브 항공 재난물 '하이재킹'
쉴 새 없이 터지는 '핸섬가이즈'
마성의 배우 둘이 모였다 '탈주'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소니픽쳐스, NEW,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국 극장가에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성수기, 비수기 개념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콘텐츠로 평가받는 시대로 변모한 것.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 한 자신감이 있는 영화라면 여름 시장으로 나올 환경이 됐다. 수백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텐트폴' 영화는 아니지만 신선하고 독창적 작품들이 '6말7초'(6월 말 7월초)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공통점은 남남(男男)케미, 차별점은 장르다. 오컬트 코미디 '핸섬가이즈'부터 액션 '탈주', 항공 재난물 '하이재킹'까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극장가다.

 이게 실화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하이재킹'

/사진=키다리 스튜디오, 소니픽쳐스

하정우, 여진구라는 이름만으로도 티켓 구매를 유발하는 영화 '하이재킹'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1971년 1월 23일 대한민국 상공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납북 미수 사건'을 토대로 했다. 강원도 고성 출신 20대 청년 김상태가 약 60명이 탑승한 여객기를 납치해 북으로 향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 사건은 기장과 승무원들의 용기, 희생이 없었다면 대형 참사로 끝날 수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영화는 실화의 배경을 그대로 따른다. 대한민국 상공 여객기 조종사 태인(하정우)과 규식(성동일)이 김포행 비행에 나섰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탑승 중인 승객들의 분주함도 잠시,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제폭탄이 터지며 기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지금부터 이 비행기 이북 간다." 여객기를 통째로 납치하려는 용대(여진구)는 조종실을 장악하고 무작정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은 한쪽 시력을 잃고 혼란스러운 기내에서 절체절명의 상황에 부닥친 태인은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침 삼킬 틈 없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공군 출신 부기장 태인은 용대의 협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객기로 곡예비행을 하기도 한다. 여객기의 월북을 막으려 출격한 공군 전투기에 대항하기 위해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캐릭터들의 전형성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지만 억지스러운 신파가 없는 것은 장점이다. 시민영웅 태인의 입장에 몰입하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하정우가 발휘한 힘이다. 또, 데뷔 후 첫 악역을 맡은 여진구도 왜 그가 아역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왔는지 증명할 만큼 날 선 눈빛을 선보인다. 기존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하염없이 진지한 성동일도 하정우 옆을 든든히 지킨다.

/사진=키다리 스튜디오, 소니픽쳐스


'아수라', '1987', '백두산' 등 대작으로 조연출 경험을 쌓은 김성한 감독은 연출 데뷔작인 '하이재킹'에 대해 "범죄 스릴러로 포장된 영화지만 실화라는 점은 배제할 수 없다"며 "감동과 눈물을 위해 만들지 않았고, 삶의 끝에 선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평소 위트 넘치는 이미지로 각인된 하정우도 MSG를 쏙 빼고 담백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실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주는 무게감과 힘이 있어 주어진 상황 그대로 연기했다"며 "기본에 충실하면서 각자의 역할과 연기 표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코로나 이후로 패러다임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7월 말 8월 초'가 핫한 개봉일자인데, 성수기 비수기 구분도 없어진 것 같다"며 "그럴 때 주연으로서 무엇을 해야할까. 딱히 뾰족한 수도 없다. 관성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깨어있는 마음과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6월 21일 개봉. 100분. 12세 관람가.

 "영화 끝나도 짜증 안 낼 것"…이성민의 자신감 '핸섬가이즈'

/사진=NEW

쉴 새 없이 터진다. 황당무계한 캐릭터, 어이없는 전개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한국에 없던 오컬트 코미디의 등장. 이성민, 이희준 주연의 영화 '핸섬가이즈'의 이야기다.

'핸섬가이즈'에는 어처구니없는 캐릭터 두 명이 주인공이다.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이희준). 이들의 스스로 멋에 취해 살아가지만, 현실은 이사 첫날부터 특별 감시 대상이 될 만큼 험상궂다. 10년 목수 일을 해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전원생활을 꿈꾸며 이사 간 새집, 부동산에 속았나 싶지만 누구보다 순박한 이들은 집을 고쳐 살기로 한다. 물에 빠질 뻔한 미나(공승연)을 구해주려다 오히려 납치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이어지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지하실에 있었다. 오래전 봉인됐던 악령이 깨어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세상이 보는 재필과 상구의 외형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다. 이들은 누구보다 새하얀 마음을 가졌으나 주변 인물들은 거친 외모만 보고 이들이 범죄자이지 않을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다. 하지만 이들만 모른다. 두 사람은 스스로 잘생겼다고 여기며 서로를 칭찬한다. 여기에 지하의 악령까지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관객을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시킨다.

/사진=NEW

'핸섬가이즈'는 한국에서 쉽게 찾아보지 못한 형식이다. 사람에게 빙의하는 악령과 가톨릭 신부의 퇴마 의식, 슬래셔 무비를 연상하게 하는 주변인들의 죽음은 할리우드 B급 오컬트 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연기하는 이성민과 이희준이다. 그동안 '서울의 봄',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서 묵직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성민은 무려 '꽁지머리 전기톱 살인마'로 분했다. 아기 배를 연상시키는 뱃살까지 노출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살인자ㅇ난감', '남산의 부장들'에 출연했던 이희준은 우락부락한 성난 근육과 달리 한없이 세심하고 다정한 상구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여기에 '범죄도시' 시리즈를 통해 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박지환도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이성민은 "외줄 타기 하는 연기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게 배우들의 속마음"이라며 "그런 지점이 발동해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가 마음에 든다"면서 "이번에 잘 되면 '핸섬가이즈2'를 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관객 반응은 예상과 항상 일치하지 않아 불안하지만, 확실히 다른 재미가 있다"며 "예상할 수 없는 전개는 우리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가 끝나도 절대로 짜증 안 내며 나가실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6월 26일 개봉. 101분. 15세 관람가.

 연기력 '노 다웃'…이제훈X구교환의 거친 추격전 '탈주'

남북 분단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라서 가능한 영화가 나온다.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탈주'다. 북한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규남의 계획을 알아챈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말리려던 규남까지 졸지에 탈주병으로 체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탈주병 조사를 하기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마련하며 실적을 올리려 하지만 규남이 현상을 배신하고 탈출을 감행하며 물러설 길 없는 추격을 시작한다.

과거 이제훈은 2021년 한 시상식에서 "구교환 배우와 꼭 같이 연기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당시 구교환은 시상대 위 이제훈을 향해 손 하트를 보내며 응답했고, 결국 두 사람은 '탈주'에서 만나게 됐다.

'탈주' 스틸. /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더램프


이종필 감독은 "이제훈이 재규어처럼 직진한다면, 구교환은 맹수가 아닌 공작처럼 아름답게 날개를 펼치고 쫓는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이 작품을 통해 육체적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했다. 그는 군 생활에 이어 탈주를 감행해 점점 말라가는 규남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피 토하는 감량을 진행했다. 그는 "최초로 몸 전체 실루엣이 다 나온다"며 "짧은 장면이지만 규남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탈주라는 설정의 특성상 끊임없이 이어지는 달리기 신을 찍어야 했던 것도 이제훈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의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촬영을 반복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장면을 위해 본래 계획보다 더 많은 테이크를 이어갔다고.

구교환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는 여유롭고 느긋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그의 내면은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목표물을 쫓는다. 추격을 위한 다채로운 액션을 소화한 구교환은 "어떻게 스나이핑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현상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졌던 인물로서 메트로놈을 듣듯이 리듬감을 기반으로 호흡을 잡아갔다"고 언급했다.

이어 영화에 대해 "장르적으로 극화돼서 보일 뿐이지 현상 안의 심지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말해 장르적인 재미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7월 3일 개봉. 94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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