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권익위'의 '원영적 사고'…대통령은 '럭키'를 외칠 수 있을까?

박세열 기자 2024. 6. 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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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대통령 부부'만 예외로 한 고약한 결정

"제 앞사람이 제가 사려는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스페인 여행을 가서 유명 빵집을 찾았다. 줄을 섰는데 차례가 돌아오자 사려던 빵이 모두 떨어졌다. 'X세대'라면 "내가 우려한 나쁜 일은 항상 내게 벌어지지"라며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겠지만 장원영은 "역시 난 럭키비키야(Lucky Vicky)행운을 의미하는 '럭키'에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를 붙인 말)"를 외친다. 하긴 'X세대'의 노래 DJ DOC의 '머피의 법칙' 가삿말도 '재수 없는' 상황에 부딛힌 자신을 탓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날 하여도 내가 꿈꿔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테야"라고 끝맺음한다.

장원영의 행동은 '원영적 사고'라는 각종 밈(meme)을 낳으며 유쾌하게 소비되고 있다. '원영적 사고'가 유행하자 장원영은 "정신승리와 유사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원영적 사고는) 진짜 승리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즉 '원영적 사고'의 핵심은 '정신승리'에 따라붙는 '자괴감'과 '냉소'까지 제거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를 완벽히 믿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영적 사고'의 원리는 간단하다. '좋은 결론'을 생각해두고, 논리 구조를 거기에 끼워맞추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은 후, 그 상황의 원인이 된 일을 '긍정적 요소'를 낳은 인과관계로 설정한다. '원영적 사고'는 주로 긍정의 힘을 뜻하지만, 간혹 의도치 않게 다른 용례로도 소비될 수 있다.

정식 명칭 '레이디 디올 파우치(Lady Dior Pouch)', 색깔은 클라우드블루,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체인 스트랩을 탈부착해 다양하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독특한 액세서리다. Lady Dior 라인의 다양한 아이템과 매치하기 좋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파우치라고 디올 측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에서 '디올백'은 이런 물리적 특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상징계를 떠다니는 무수한 기표들로 이뤄진 어떤 욕망이다. 누구의 수중에 도달했느냐에 따라 성격과 클래스가 달라진다. 그것은 샵에 있을 땐 '이태리제 명품 백'이지만 누구에겐 '외국회사 그 머 쪼만한 파우치'로도 불린다.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을 땐 환금성 큰 자산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청탁을 위한 뇌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영부인에게 들어가면 갑작스레 국가적 보존 가치가 생겨난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국고로 귀속되고, 곧 '대통령 기록물'이 되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300만 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받은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한 후 정승윤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부정청탁금지법에선) 직무관련성이 있는 경우만 신고하도록 돼있다. (그런데)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대통령기록물법상의) 대통령 기록물이 되는 것이라 또 신고 의무가 없다. 대통령은 이러나 저러나 신고 의무가 없는 사건이 된다.

(...)대통령과 가족을 제외한 모든 공직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외국인으로부터 선물 받으면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하게 돼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통령의 가족이 수수하는 물건은 대통령물관리법에 따라 자체 판단해서 대통령기록관으로 가게 돼있다. 대통령기록물은 신고 의무가 없고 받는 즉시 국가로 귀속된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디올백'을 받았다. 하필 이 사건이 권익위에 신고됐다. 권익위의 설명은 '위반 사항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고 거기에 논리를 끼워 맞춘 것처럼 보인다. 뭔가 대단한 논리를 발견한 것처럼 구는 권익위의 독백을 해석하면 이렇다. "고위 공직자 부인이 300만 원 짜리 명품백을 받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냥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 대통령이야. 대통령과 배우자가 외국인에게 받은 선물은 모든 게 대통령 기록물이 되거든. '럭키'!"

그리하여 모두가 대통령의 부인이 명품백을 받는 장면을 지켜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박절하지 못한 아내와 그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남편의 '아쉬움'만이 쓸쓸하게 나뒹군다.

권익위의 논리에서 가장 고약한 점은 '대통령 부부'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청탁금지법'의 예외 사항으로 유권해석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딱 하나의 공직, 대통령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공직자는 외국인에게 선물을 받더라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될 수 없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이지만, 오직 '대통령직'만 예외 상황이 발생한다. 영부인이 받기 전의 디올 백은 뇌물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성격을 함께 갖지만, 영부인이 받는 순간 그건 '대통령 선물'인 상태로 변하게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대통령 선물'로 규정되면 직무 관련성이 발생하지만 그 직무 관련성으로 인해 소유자가 국가로 변한다는 것이다. 무적의 순환 논리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영부인에게 선물하는 모든 것은 대통령 기록물이 된다.

범용될 수 없는 유일자를 위한 단 하나의 논리를 개발하는 것, 우린 그런 걸 '왕정 체제'에서 많이 봤다. 독재에 비유하는 것도 사치다. 왕과 왕비, 단 두사람만을 위한 유권 해석이 있다면 이런 식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권익위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김건희 영부인이 최재영 목사부터 300만 원짜리 디올백을 받은 즉시 그걸 '대통령 기록물'이라고 인지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영부인이 '디올백'을 대통령 기록물로 인지한 시점은 언제인가? 2022년 9월 서초동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받는 '즉시'였나? 아니면 2023년 11월 해당 영상이 공개된 시점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한달 후 권익위에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가 접수된 시점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 만약에 미리 이런 상황을 얘기를 했더라면 조금 더 저는 아직도 이 26년간 그 사정 업무에 종사했던 그 DNA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저라면은 조금 더 좀 단호하게 대했을 텐데 제 아내 입장에서는 뭐 그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 좀 하여튼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저한테 만약에 미리 이런 상황을 얘기를 했더라면"이라는 말은 영부인이 명품 가방을 주러 찾아 오는 최 목사와 관련된 상황을 대통령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 기록물'을 받는 상황이라면 대통령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진짜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사후에 '몰랐다'고 말을 맞췄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믿더라도 영부인은 명품 가방이 '대통령 기록물'이 될 것이란 상상을 못했다고 추정하는 게 맞다. 본인에게 준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리고 최재영 목사의 청탁 문자 메시지가 영부인에게 갔고, 실제로 대통령실 행정관이 움직였다는 정황이 있다.

권익위의 사건 종결과 검찰 수사는 별개라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권익위가 '럭키'하게 발견한 이 논리는 검찰에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권익위가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기 때문이다. 권익위가 사건 종결을 발표한 시점이 미묘하다. 권익위가 조사 시한 60일을 넘겨 두 차례나 시한을 연장하고 있는 사이, 대통령실은 '반부패' 사정 기관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을 만들었고, 명품백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중앙지검장과 1차장, 그리고 이원석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주요 간부들을 물갈이했다. 권익위가 '가이드라인'을 제안할 적기로 보는 게 맞다.

반부패 소관 정부 기관이 대통령 기록물로 이미 규정한 '디올백'을 검찰이 뇌물로 볼 수 있을까? 대통령 기록물에 '알선수재'가 적용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결론을 내놓고 논리를 짜맞춘 듯한 권익위의 '원영적 사고방식'은 용산의 '원영적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 전국민이 목격한 대통령 영부인의 백주 대낮 금품 수수 사건을 두고 '초 긍정적' 판단력을 과시한 권익위는 '김건희의 디올백'을 '외국 사절단이 준 선물'과 동일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며 '럭키'를 외쳤을테다. 그러나 그걸 지켜본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은 많이 다를 것이다. 정치판에 격언이 있다. 진짜 스캔들이 시작되는 시점은 사건이 종결된 이후부터다. 특검 명분은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3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공항에서 환송나온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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