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은 바로 다음날 여자랑 잤어”···패륜 이야기 쓴 소설가의 반전 [사색(史色)]
[사색-73] “엄마가 오늘 죽었다. 아니 어제였던가. 잘 모르겠다.”
본인을 낳아 준 모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그의 표정은 심드렁합니다. 회사에 모친상을 알리고, 휴가를 쓰는 것조차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버스 안. 그의 얼굴에서 어떤 슬픔의 편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왕래도 없는 친척의 상갓집에 하릴없이 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소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좀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알제리-프랑스인(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인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패륜을 저지를 때조차 그의 표정은 한결 같습니다.
‘이방인’은 ‘부조리주의’(absurdism)의 대표작으로 통합니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인다는 통찰. 그 속에서 목적을 찾아나선 합리적인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세계의 작동 질서인 혼돈과 닮은 뫼르소는 어쩌면 ‘진리’를 깨달은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게 카뮈의 생각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인물을 통해 세계의 작동방식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구현한 것이지요.
이 작품을 썼을 때 알베르 카뮈의 나이는 고작 스물 아홉. 30대가 되기 전에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 대문호의 자리에 오릅니다.
소설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투영하겠지만, 알베르 카뮈는 뫼르소와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신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태양’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절절했지요. 뫼르소와 공통점은 알제리-프랑스인이라는 사실뿐입니다. 그만큼 카뮈는 정열이 가득한 위인이었지요.
1957년 10월17일 오전, 스웨덴 한림원은 알베르 카뮈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이방인’을 발표한 지 15년만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44살,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두 번째로 어린 나이였습니다.
카뮈는 그날 알제리 빈민가인 벨쿠르로 전보를 하나 부쳤습니다. 그곳에 사는 어머니 카트린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뫼르소와 달리 그는 어머니를 끔찍이도 아꼈습니다. 가난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카뮈를 응원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프랑스인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알제리로 넘어왔습니다. 카뮈의 조부도 이때 알제리로 넘어온 사람이었지요. 어머니 카트린과 카뮈는 모두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 ‘알제리-프랑세스’였습니다.
프랑스 본토인들은 알제리-프랑스세를 ‘검은발’이란 의미의 ‘피에 누아르’라고 부르며 경멸했습니다. 카뮈의 집안도 마찬가지로 멸시를 당하는 ‘검은발’이었습니다.
청각장애로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늘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던 것이었지요. 그의 집은 빈민가에 있었지만, 사랑만큼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다음으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바로 당신, 루이 제르맹 선생님이었습니다. 작고 불쌍한 나에게 내민 당신의 애정 어린 손길,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년 기자 카뮈는 카빌리라는 지역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알제리인을 취재합니다. ‘카빌리의 빈곤’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억압적 식민정책을 정면으로 고발한 작품이었지요.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모두 화제를 부를 수밖에 없던 작품(실제로 이 기사는 책 ‘시사평론3 알제리 연대기’란 이름으로 출판됩니다)이었습니다. 카뮈를 향해 “알제리를 위해 싸운 유일한 프랑스인”이란 상찬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는 자랑스레 “나는 프롤레타리아 지성인”이라고 말하곤 했었지요.
카뮈의 펜촉은 프랑스의 식민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총독 정부가 카뮈가 일하고 있는 언론사 ‘알제-레퓌블리켕’을 압박하기 시작했지요.
카뮈는 결국 사랑하는 ‘조국’ 알제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언론사 ‘파리 수아르’에서 편집기자 일자리를 얻게 되었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혼돈의 시대가 그의 작품에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의’라는 개념이 멸종위기에 처한 시기,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한 뫼르소는 야만의 시대를 대처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카뮈는 그렇다고 소설 인물처럼, 부조리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과 전쟁을 벌이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물밑 지원하는 기관지 ‘컴뱃’에서도 기자활동을 이어갔지요. 나치의 악행을 알리기 위해 그의 글솜씨를 뽐낸 것입니다.
1945년 그는 쌍둥이 두 딸 카트린과 잔느를 얻었습니다. 부인 프라신 포레와 사이에서였습니다. 카뮈는 부인이 임신한 동안에 마리아 카사레스와 혼외 관계를 가졌지요.
뉴욕의 젊은 대학생 패트리샤 블레이크와도 열애합니다. 부인 프라신 포레는 우울증을 얻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었지요. 유명 인사를 남편으로 둔 대가를 치르기라도 하듯이요. 프랑스 예술가들의 방종한 사생활은 카뮈에게도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해방 이후 카뮈는 동료 지식인들과 대립합니다. ‘소련’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카뮈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해방구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민족해방전선(FLN)은 더 이상 프랑스의 압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독립동맹군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25만명이 사망하는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습니다.
알제리를 사랑한 식민 모국의 프랑스인. 모순의 존재였던 카뮈에게 수 많은 시민들이 입장을 요구했습니다. 당신은 알제리의 편인가, 프랑스의 편인가.
미래의 천국을 위해서 현재의 지옥을 만들겠다는 이상주의자의 주장을 그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렉스프레스지 논설위원 자리에 오른 카뮈 . 그는 사설을 통해 끊임없이 평화를 외쳤습니다. 그저 글로써만이 아니라, 양측을 휴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요.
마침내 1956년 1월 22일 프랑스 정부와 알제리 FLN의 첫 대화가 열립니다. 카뮈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지요. “카뮈를 죽이겠다”는 극단주의자들의 협박에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극단의 정치적 갈등 속에 그러나 평화주의자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카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 측의 무력 충돌은 계속됩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어머니 카트린은 “너무 젊은데...”라고 읊조리며 아들의 죽음을 속으로 삼켰습니다.그리고 같은 해 8월 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제리의 빈민가 벨쿠르에서였습니다. 아들을 대문호로 키웠던 바로 그 자리, 그곳에서였습니다.
카트린이 살아있었다면, 그녀 역시 실향민이 되었을 운명이었습니다. 8년의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 수용소 감금, 강간 등의 전쟁 범죄에 대해 알제리인들은 결코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의 범선’을 타고 있습니다. 이 범선에 악취가 풍긴다해도, 감시원들이 지나치게 많다고 해도, 예술가는 자기 몫의 노를 저어야 합니다.”
ㅇ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엄마의 죽음에도 심드렁한 부조리한 캐릭터를 구현해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ㅇ그러나 ‘인간’ 카뮈는 자기의 소설과는 달리 엄마를 사랑하고 평화를 염원한 누구보다 뜨거운 인간이었다. 바람을 피우는 여성편력도 있었다.
ㅇ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 활동, 헝가리를 억압하는 소련 비판,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통치를 비판했다.
ㅇ1960년 1월 47살에 사망한 카뮈는 여전히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참고문헌>
ㅇ이기언, 카뮈와 알제리, 불어불문학 연구 95집,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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