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 의사' 서연주 "사람이 가장 위대한 치료제"[조수원 BOOK북적]
의사·환자·장애인으로 깨달음 "감사"
"온기 전하는 진정한 치유자 희망"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한쪽 눈을 잃었지만 시야가 더 넓어졌어요. 아파본 만큼 아픈 사람이 눈에 보이거든요.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는 제 노력이 전해지면 위로가 조금은 되지 않을까요?"
최근 에세이 '씨 유 어게인'(김영사)을 낸 의사 서연주(34)는 '윙크 의사'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어 찡긋한 모습 덕분이다.
어릴 적부터 수재로 이름을 알리며 가족들의 자랑이자, 동료들 사이에서는 부당한 것은 절대 참지 않는 해결사 ‘서다르크’로 불렸다. 전도유망한 의사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 의사'로 변한 건 한 순간이었다.
“2022년 11월 6일 일요일. 강원도 인근의 외승 센터에서 낙마 사고가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의 낮 풍경이 마지막 장면이었다는 것 말고는, 사고 전후 수 시간가량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10쪽, '시작하며')
아버지의 목소리에 어렴풋이 정신이 드니 응급실에 누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 서울에 근무하던 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이동했다. 덜컹거리는 구급차에선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있었다.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의사로서 일하던 병원에 환자로 도착해 직장 동료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 실감 나기 시작했죠."
최근 뉴시스와 만난 의사 서연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겪으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고 후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총 일곱 번의 수술을 받았고, 반복되는 고통과 회복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원망하고 다잡기를 수백 번 거듭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의사의 좌절은 어쩌면 이유가 있었던 걸까.
환자 서연주
환자로서 두 번의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있었다. 퇴원하는 일과 눈 하나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었다.
서연주는 "병원 안에서는 안전한 둥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약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감염 징후가 보이면 바로 조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병원을 빠져나가서 검사들도 못하고 의사들도 못 만나는 그런 상황이 두려웠다"고 했다.
환자의 입장으로 병원에 도착하니 자신이 갖고 있던 의학적 지식은 되려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작가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부모님께 안구 적출부터 수술·통증 얘기까지 하는 걸 들었다"며 "제가 의사니까 용어들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듣기 싫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고 상황을 떠올렸다.
"병원 안에 있을 때는 환자였으니까 괜찮았는데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눈이 두 개였던 삶에서 한 개로 삶이 바뀌는 게 무서워 많이 울기도 했죠." 지난 5월23일 일곱번째 수술을 마쳤다.
책을 출간 한 건 치유의 원동력이 된 '기록' 때문이다. "그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되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을 뿐이었는데…좋아하는 언니가 사고 후의 기록을 책으로 내보라고 하더라고요. 의사로서 집보다도 훨씬 오래 있었던 공간이 병원인데 환자로서 병원에 있으니 너무 생경했어요. 당시에 이걸 기록해서 여기서 왜 내가 이런 기이한 감정들을 느끼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이유도 있었어요."
결심했다.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며 고통과 회복의 시간 속에서 깨달은 건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의 헌신과 사랑에 비로소 눈뜨게 되면서다.
환자였을 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병문안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동생이 한 말이다.
"저를 보러도 오지도 않고 그래서 좀 서운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동생이 자기 눈을 빼주겠다고 얘기했다는 말을 듣고 저한테 큰 충격과 울림, 감동을 받았어요."
그는 "다쳐서 24시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 보니까 그때 제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밖에 없더라"며 "그때 많이 깨달았고 반성했다"고 했다.
의사 서연주
그는 자신을 "책임감이 강하며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사고를 당한 순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버거웠고 숨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만약 거기서 도망쳤으면 제가 다시 그 사람들을 보고 사회로 나가고 다시 어떤 역할을 맡는 게 굉장히 민망했을 것 같아요. 당시에 너무 힘든 순간이었지만 내가 끈을 다 잘라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최대한 잡고 있으려고 노력했죠."
사고 이후 의사 서연주는 환자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예약 시간과 무관한 것이 진료 차례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할 거면 예약 시간은 왜 잡는담!’ 의사로 일할 때는 미처 몰랐다. 환자들이 줄지어 밀려왔기에 누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헤아릴 틈이 없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오래 기다리시느라 힘드셨겠다’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건데.”(130쪽, '고효율 인간이 못 견디는 비효율의 삶')
그는 "환자들이 입원해서 치료할 때 특히 암 환자들이 반복해서 재발하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게 이해가 안돼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만 했었는데 이젠 환자가 지치기도 하고 병원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게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의사로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의사와 환자, 병원의 현실에 눈을 떴다고 했다.
수술과 회복의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자리인 의사로 복귀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응급의료센터 내과 전담의와 우리베스트내과 소화기내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의사 파업’ 이슈로 떠들썩하지만 그는 환자들을 살피기로 했다.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 배운 것이고, 환자가 피해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의사 서연주
“어디까지가 심한 정도이고, 어디까지가 심하지 않은 정도란 말인가. 이 과정에서 많은 장애인과 가족들이 마음을 많이 다친다. 실제로 내 동생은 내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되었다고 했더니,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갑작스러운 신체 상실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국가가 가벼이 여기고 폄훼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극심한 고통이 국가가 볼 때는 별것 아닌 걸로 치부되는 느낌이랄까.”_185쪽,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라고요?')
‘심한 장애인’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등급을 매기고, 다양한 장애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계마다 기관에서 요구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서류들, 심사 기준, 비용 등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느낌을 주어 재활 의지를 꺾는 현실이었다.
장애인으로서 삶은 '장애인 등록'을 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던 날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장애를 증명하고 등록하는 과정들이 우리나라에서 너무 불편하고 복잡하다"며 "저처럼 이렇게 활동이 가능하고 병원에서 일을 하니 서류를 조금 빠르게 받을 수 있었던 사람조차도 과정이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 익숙하지도 않고 만약 보행이 어렵거나 주변에 어떤 조력이 불가능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할지 알게 됐죠."
한쪽 눈 실명이라는 사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사람이 가장 위대한 치료제’라는 것.
작가는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의술도, 약도 아픈 이를 낫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정말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조용히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온전히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씩씩하고 밝은 환자이자 의사,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 대신 윙크를 하는 의사 서연주는 "온기를 전하는 진정한 치유자"를 꿈꾼다.
"인생에 어떤 형태든 시련은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시련을 겪게 된 게 인생에 정말 감사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진짜 중요한 걸 놓쳤을 거예요. 이 시련은 영원히 시련으로 남지 않고 오히려 좋은 순간이 찾아올 거예요.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건 스스로에게 달려 있어요."
미래가 창창한 젊은 의사였던 그가 갑자기 환자가 되고,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저는 제 자신과 환자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를 치료하는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제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고도 꺾이지 않도록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들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261쪽, '마치며')
☞공감언론 뉴시스 tid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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