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강국 미국은 왜 중국을 견제할까…“中 바이오굴기 성과”

허지윤 기자 2024. 6. 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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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항체약물·면역항암제 잇따라 기술수출하자 견제
거대 인구 발판으로 임상시험 시장도 미국 제쳐
“중국 기업 빠진 자리 두고 일본·한국·인도 경쟁 예상”
미국과 중국의 정치군사 갈등이 제약바이오산업으로 번지고 있다./wildpixel/Getty Images

미국이 중국 제약·바이오 기업을 견제하려고 추진한 바이오보안법(BioSecureAct)이 의회에서 제동이 걸렸으나, 여전히 법안이 연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바이오보안법은 미국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적대적 외국 바이오 기업의 장비와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이 법안은 지난 4월 상하원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급물살을 탔으나, 지난 12일 미 하원의 국가수권법(NDAA) 수정안에서 빠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 소식에 바이오보안법의 대상이 된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반등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국 우시그룹의 적극적인 로비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반색하기는 이르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이오보안법 제정을 취소하거나 폐기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현 교보증권 제약바이오 수석 연구원은 13일 ‘미국 생물보안법 동향 보고서’에서“미국은 중국의 바이오 굴기(崛起, 우뚝 서다)를 큰 위협으로 인식 중”이라며 “미국의 바이오보안법 통과가 소폭 지연된 것이고, 통과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중국 바이오 신약, 해외 수출 잇따라

최근 중국 바이오기업의 성과를 보면 세계 최대 제약 강국 미국이 중국 기업을 견제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인 BGI는 2012년 미국 컴플리트 지노믹스(CGI)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해, 일루미나, 써모피셔 등 미국 기업이 사실상 과점해 온 유전체 분석 장비 시장 지형에 균열을 일으켰다.

글로벌 항암제 시장 구도를 흔들 만한 성과도 잇따랐다. 국내 의대의 한 연구자는 “과거엔 의학계가 중국에서 R&D로 나온 의약품과 연구논문 성과를 어떻게 믿느냐며 의심했는데, 이제는 다르다”며 “세계 주요 학회에서 중국 기업들의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으며 기술이전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과 ‘키메라 항원 수용체 T(CAR-T·카티)’ 세포치료제 연구·개발(R&D) 성과가 대표적이다. ADC는 면역 단백질인 항체(미사일)에 항암제(폭탄)를 연결해 암세포만 타격하는 유도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다. 카티는 암 환자의 T세포를 꺼내 몸 밖에서 유전자를 바꿔 특정 암세포를 인식하고 죽이는 능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업계는 미국 머크(MSD)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에 중국의 켈룬바이오텍이 개발한 ADC ‘MK2870′을 묶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임상 3상 시험에 진입한 것에 주목했다. MK2870은 비소세포폐암의 90% 이상에서 발현되는 단백질인 TROP2를 목표로 하는 ADC이다. 지난 2022년 12월 MSD는 켈룬의 ADC를 도입하는 데 계약금 1억 7500만달러(2423억원)와 개발 단계별로 받는 기술료를 포함해 총 94억 7500만달러(13조 1217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항암제 강자로 꼽히는 스위스계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도 올해 1월 중국 메디링크 테라퓨틱스의 ADC를 사들였다. 거래 규모는 10억달러(1조 3783억원)였다. 메디링크는 중국 켈룬의 전 대표와 전 부사장이 2020년 설립한 ADC 전문 기업이다.

미국 서밋테라퓨틱스의 이중항체 항암제인 이보네시맙도 중국 바이오텍 아케소가 임상 3상 시험 중일 때 사들였다. 계약금 5억달러(6928억원)를 포함해 최대 50억달러(6조9244억원) 규모 계약이었다. 이 약은 미국 머크의 항암제 키트루다의 잠재적 경쟁 약물로 평가되고 있다. 키트루다는 거의 모든 암에 처방할 수 있는 면역항암제로, 올해 매출 목표만 최대 642억달러(85조원)에 달한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중국 레전드 바이오텍의 기술을 사들여 다발골수종 카티 세포치료제 ‘카빅티’를 개발했다. 앞서 중국 레전드는 2017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카티 후보 ‘LCAR-B38M’의 임상시험 성과를 발표했다. 이를 본 J&J 측이 레전드에 선급금 3억 5000달러(4135억원)를 주고 공동 개발해,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현재 카티 세포치료제 중 가장 효능이 높고 상업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달리 보면, 중국 바이오 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글로벌 빅파마의 미래 성장에 중요한 열쇠가 됐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CAR-T 치료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다. 중국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614건이다. /Chinacartcell 홈페이지 보고서

◇중국 위탁생산 기업 빠지면 한국에 기회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성과 뒤에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제도적 지원이 있었다. 한 예로, 중국 당국은 카티 세포치료제를 개발하고 출시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손질했다. 2017년 중국 당국은 세포치료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2019년 환자 사용을 허가했다. 2020년에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관련 연구·평가에 대한 기술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홍콩과 미국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 R&D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핵심인 자금 조달 발판도 마련했다.

이런 토양 위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와 전략적 협력을 바탕으로 R&D 역량을 키워왔다. 글로벌 제약사는 인구가 거대한 중국에서 앞다퉈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중국의 카티 세포치료제 임상시험 수는 2017년 6월 이후부터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다.

카티 세포치료제가 세상에 처음 나온 2017년 전후로 스위스 노바티스와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잇따라 중국에 자회사를 세웠다. 이들은 현지 바이오 기업과 손잡고 카티 세포치료제를 임상시험했다. 2017년 노바티스는 미 FDA로부터 첫 카티 세포치료제인 킴리아를 승인받았다. 길리어드의 예스카타(2017년)·테카르투스(2020년), BMS의 브레얀지(2021년)도 FDA의 승인을 받았다.

국내 업계는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패권 경쟁’이 새로운 기회라고 본다. 예를 들어 바이오보안법의 영향으로 중국 최대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가 미국에서 퇴출되면 그 공백을 한국 기업들이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본 후지필름과 인도 엔젠바이오사이언스 같은 CDMO 기업들은 발 빠르게 미국에 생산시설을 세웠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생물보안법에 따른 반사이익을 여러 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노리고 있다”며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기회를 잡으려면 국내 기업들의 생산설비 신·증설을 가속하는 데 한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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