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실존문학의 선구자 카프카 유작의 상속자는?
절친이자 후원자인 브로트에
“모든 작품 불태워달라”
유언했으나 배신
전기 출판·유작 등 공개
상속권도 女비서에 넘겨
이스라엘 정부, 원고반환 소송 끝 승리
9년간 세기의 재판 과정
한편의 법정 드라마 보듯 ‘생생’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베냐민 발린트/ 김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2만4000원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무기력을 예민하게 포착해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카프카가 사망한 지 80여 년, 그의 지기이자 후원자였던 막스 브로트마저 사망한 지 40여 년이 된 2007년 여름. 이스라엘 텔아비브 가정법원에 돌연 카프카와 브로트의 유고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된다. 이스라엘 당국이 국립도서관을 앞세워 텔아비브에 사는 73세의 에바 호페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는 왜 또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측은 브로트가 호퍼 부인에게 유산을 넘긴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일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브로트가 넘긴 것은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를 선택할 권한일 뿐, 그녀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을 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카프카가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 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국가인 이스라엘 정부가 소유해야 마땅하다고 강변했다.
소송은 텔아비브 가정법원(2007~2012년)과 지방법원(2012~2015년)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까지 무려 9년이나 이어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개인의 소유권 분쟁은 물론 독일 및 이스라엘 두 나라가 간접 대결하는 형태로 전개되면서 법 영역과 문학적, 윤리적 차원의 딜레마로 가득 찬 분쟁으로 치달았다.
독일의 ‘마르바흐 아카이브’ 측은 중립적이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서도 브로트가 1960년대 마르바흐를 방문해 자신의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적도 있다며 에바 호페를 거들었다. 특히 마르바흐는 카프카 문학을 연구할 전문인력과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독일이야말로 카프카의 문학 세계가 더 잘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브로트는 이 과정에서 방대한 원고 편집 작업을 위해서 프라하 난민 출신의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고용했고, 1968년 세상을 떠나면서 카프카의 원고를 포함한 자신의 전 재산을 에스테르 호페, 그러니까 에바의 모친에게 상속했다. 에스테르 호페는 1988년 카프카의 ‘소송’ 원본 원고를 200만달러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파는 등 카프카 원고 일부를 매각해 삶을 영위했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마저 사망하자, 두 딸 에바와 언니 루트 호페가 상속 절차를 밟으려 할 때 이스라엘 정부가 또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소송은 가정법원에 이어 지방법원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승리로 끝났고, 2016년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승소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에바 호페는 카프카 원고를 포함한 브로트 유산 전부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양도해야 할 것이며 단돈 1셰켈의 양도 보상금도 없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에바는 카프카 원고 인도가 한창 진행되던 2018년 분노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책은 마치 한 편의 법정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 개인과 두 국가 간에 벌어진 치열한 법정 공방과 함께, 카프카와 브로트의 문학적 여정으로 나아가게 한다. 카프카 타계 100주년을 맞이해 그의 작품과 해설서들이 줄지어 출간 또는 재출간되면서 때 아닌 ‘카프카 붐’이 일고 있는 이때, 카프카의 삶과 문학, 문학적 유산, 브로트와의 우정을 다층적 차원에서 돌아다보게 한다. 12개국에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은 책은 2020년 샤미 로어 유대문학상을 받았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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