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보며 스마트폰? 뒤가 큰일 납니다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두고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비 같은 특정 증상이 없다면 짧은 시간 안에 집중해서 원래 목적대로 볼일을 다 보고 나올 수 있지만, 스마트폰 화면 속 다양한 콘텐츠에 정신을 뺏겨버릴 경우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염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시간이 길어지고 점차 쌓여갈수록 항문 건강은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치핵을 비롯해 치열, 치루 등의 항문질환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통이 되풀이될 수 있다.
항문 부위 대표적인 질환인 치핵, 치열, 치루를 아울러 통상 치질이라고 부른다. 치질 중에서도 70~80%를 차지하는 치핵은 항문 점막 주위에 돌출된 혈관 덩어리가 생기는 질환이다. 화장실 변기에 오래 앉아 있을 때 특히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김문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변기에 장시간 앉아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혈액이 항문으로 심하게 쏠리게 해 치핵을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핵은 항문 안에 생기는 내치핵과 밖에 생기는 외치핵으로 나뉜다. 내치핵은 통증 없이 피가 나거나 배변 시 돌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돌출된 덩어리가 부으면 심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배변 후에도 시원하지 않을 때가 많다. 외치핵은 항문 가까이에서 발생하는데, 이곳에 혈액의 흐름이 정체되면서 혈전이 생기면 내치핵보다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항문 주위에서 단단한 덩어리를 만질 수 있고, 터지면 피가 난다. 환자에 따라 두 유형의 치핵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치핵의 초기 증상은 잘 느끼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40% 정도의 환자에게선 별다른 증상이 없다. 증상이 있어도 항문 주변이 가렵거나 통증이 없는 출혈, 변이 속옷에 묻는 등의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어서 치핵임을 알아채지 못할 때도 많다. 변에 피가 섞여 있거나 혈전이 동반돼 통증이 생기는 등의 증상을 경험해 치핵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한다.
치질 환자 70~80%가 ‘치핵’
변기 오래 앉아 있을수록 위험
항문 찢어지는 ‘치열’ 만성 땐
궤양·치루 등 합병증 가능성
섬유질·물 섭취 등 식습관 중요
변비·설사 유발 약물 복용 삼가
치질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치핵은 치열, 치루와 발병 부위나 증상이 비슷하므로 서로 다른 각 질환의 성격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치열은 딱딱한 변이나 심한 설사 등의 이유로 배변 시 항문이 찢어지면서 발생한다. 배변을 할 때 찌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며, 배변을 마친 후 휴지로 닦을 때 피가 묻어 나오게 된다. 치열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겪는다. 급성 치열은 좌변기에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좌욕을 자주 하는 등 생활 속 노력만으로도 호전될 수 있으나 만성 치열은 항문 궤양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장기간 방치할 경우 항문 주위 농양이나 치루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치핵 또는 치열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발병하기도 하는 치루는 항문 주위에 비정상적인 통로가 만들어지는 질환이다. 항문 주변으로 통증이 있고 부종과 고름, 출혈이 생긴다. 원인은 치핵 외에도 만성 설사나 염증성 장 질환, 항문 주위 농양 등이 있다. 평소 치루 증상을 느끼지 못한 환자도 과로나 과음, 심한 설사를 한 후에 염증이 생겨 항문이 아프다가 곪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오래 두면 항문 주위에 개미굴처럼 복잡한 길이 뚫려 치료하기 어려워지고, 드물기는 하지만 암으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치질은 증상을 감지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타인에게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운 질환이라는 인식 탓에 병원 진료를 미루기 쉽다. 하지만 일단 증상을 발견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권윤혜 의정부을지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매일 반복되는 배변활동을 통해 증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가 진단을 통해 치료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지만, 부위 특성상 치료에는 나서지 못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무엇보다 병원을 찾아 전문 진료를 받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들 항문질환이 발생하는 데엔 여러 원인이 작용하지만 환자 개인이 손을 쓰기 어려운 유전적 소인을 제외하면 잘못된 배변 습관이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마트폰 등을 들고 장시간 변기에 앉아 있는 습관 외에 배변 시 과도하게 힘을 준다거나 잦은 설사로 이어지는 과음 등의 이유로 악화될 수 있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골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치핵이 생기거나 악화하는 경우도 많다.
진단은 항문과 이어진 직장 주위를 의사가 손으로 만져보는 직장수지검사를 통해 대부분 가능하다. 이 검사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엔 항문경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빈혈이 심하거나 40대 이상이라면 종양 또는 다른 장 질환 등은 아닌지 감별하기 위해 내시경 검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치핵과 치열은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약물 치료나 좌욕을 하는 등의 보존적 요법으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보존적 요법으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출혈이 반복되고 심한 경우, 통증이나 가려움증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 등엔 수술 치료를 시행한다. 특히 치핵 수술은 국내에서 2022년 기준 15만6432명이 받아 백내장 수술과 일반척추 수술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실시된 수술이었다. 특히 40대에서는 전체 수술 중 시행 건수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치루는 항문 주변에 생긴 구멍을 발견하고 확실히 제거하지 않으면 염증이 재발해 농양과 치루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수술로 치료한다.
▲치질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
·좌변기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
·항문 주변 혈관을 확장하는 잦은 음주
·섬유질이 적고 동물성 단백질이 많은 식사 습관
·스트레스, 고령, 임신, 가족력
·수분 섭취 부족으로 딱딱한 대변
·다이어트에 따른 변비
항문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선 식습관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배변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루 20~30g의 섬유질과 1.5~2.0ℓ의 물을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변기에 장시간 앉아 있는 행동은 좋지 않으므로 배변이 끝나면 비록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바로 일어나는 것이 좋다. 또 변비나 설사를 유발하는 약물의 복용은 피하며 증상이 발생하면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간혹 치핵을 포함한 치질이 오래되면 대장암 등 항문암으로 발전한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치루는 항문암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 김문진 교수는 “치질과 항문암이 공통으로 보이는 가장 흔한 증상은 항문 출혈인데,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 대장내시경이나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며 “치질이라면 악화를 예방하고, 암이라면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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