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사진과 ‘너무 그림 같은’ 사진[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6월 10일
월요일인 10일자 1면 사진은 저물녘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솟은 송전탑의 모습입니다. 10년 전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농성을 하던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시키는 행정대집행이 진행됐습니다. 이후 송전탑 건설은 완료됐지만 주민들의 상처는 아직 진행형입니다. 공사 과정에서 갈라진 마을공동체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밀양에서는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 행사가 열렸습니다. 10년 전 제가 갔던 곳에 막내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수도권의 밤을 환히 밝히기 위한 대규모의 송전탑이 밀양 산골마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전기는 여전히 눈물을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6월 11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고 법제사법위원회 등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상임위원장 투표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 단독으로 개원한 22대 국회는 원구성도 ‘반쪽’으로 시작했습니다. 애초 이날 1면 사진 후보로는 6개월 만에 순방을 재개한 윤 대통령 부부의 공군 1호기 탑승 사진과 극우 정당이 약진한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이날 1면 머리기사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조사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사건을 종결처리했다는 내용인데요.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가 1호기를 타며 든 가방은 ‘디올백’이 아닌 ‘에코백’이었지요. 회의에서 조금 더 강하게 주장을 해야 했었나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6월 12일
폭염이 습격했습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더위를 주제로 한 여러 사진 중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사진을 1면 후보로 골랐습니다. 한 해 동안 딱 한 번 1면에 쓸 수 있는 사진이 이 아지랑이 사진입니다. 더위 스케치의 ‘클리셰’ 사진입니다만, 이 사진이 제일 끌렸습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지열과 하늘하늘 뭉개진 차량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진기자들이 어떤 장면을 보고 ‘그림이 된다’는 건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의미고, 사진을 두고 ‘그림 같다’는 말은 사진이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회의 중 ‘사진이 너무 그림 같아서 좀 그렇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림 같은 사진’과 ‘너무 그림 같은 사진’은 다르겠다는 생각을 처음했습니다.
■6월 13일
올해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전북 부안에서 발생했습니다. 지진 규모는 4.8로 이례적인 강진이었습니다. 1면 사진은 지진 사진일 수밖에 없는 날이었습니다. 지역소방본부 제공 사진이나 독자 제공 사진 등을 찾고 모았습니다. 글 기사에는 “가장 큰 규모”에 “이례적 강진”이라는 단어들이 쓰이는데 정작 사진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싶었습니다. 재난 앞에서 더 강렬하고 센 사진을 원한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이지만, 막상 마감하려니 내밀 사진이 없어 좀 헤매기도 했습니다. 결국 두 장의 사진을 붙였습니다. 확실한 한 장이 없을 때 붙여쓰기도 방법입니다. 지진 규모에 비해 큰 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6월 14일
의료계의 무기한 휴진과 집단휴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자단체들이 연일 집단휴진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지요. 이날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견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1면 지면에 피케팅 사진은 되도록 지양하자는 생각입니다만, 이날은 피켓 문구는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전공의는 살려야 하고 환자는 죽어도 됩니까!” 환자의 처지에서 쓴 짧으면서도 핵심을 파고드는 인상적인 문구였습니다. 누가 처음에 이런 문장을 지어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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