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권력을 제한해 영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문서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6.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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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6월 15일 영국의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협정이 체결됐다.

분노가 극에 달한 귀족들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존 왕에 맞섰다.

하지만 존 왕은 자신이 강요에 못 이겨 서명했다는 이유로 마그나 카르타를 부정했다.

이에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은 1216년 10월 존 왕의 급서하면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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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영국 존 왕의 마그나 카르타 서명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는 존 왕. (출처: English School (Cassell's History of England - Century Edition), 삽화(190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215년 6월 15일 영국의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협정이 체결됐다. 이를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이라고 한다. 군주의 절대 권력을 부정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도록 규정한 문서다.

존 왕은 즉위 초기부터 빈번한 전쟁과 무모한 정책으로 영토를 잃고 국고를 고갈시켰다. 또한, 이를 메우고자 과도한 조세를 부과하고 귀족들의 토지를 빼앗는 등 폭압적인 통치를 행사했다. 분노가 극에 달한 귀족들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존 왕에 맞섰다.

그 결과 총 63개 조항으로 구성된 마그나 카르타가 체결됐다. 주요 내용은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법치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법 앞의 평등' △적법 절차 없이 누구도 체포, 구금, 추방될 수 없다고 한 '인신의 자유' △적법 절차 없이 누구의 재산도 몰수될 수 없다고 규정한 '재산권 보호' △공정한 재판 절차와 피고인의 변호를 받을 권리를 명시한 '재판의 공정성' 등이다.

이 밖에도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지방 관리의 직권 남용 방지, 당면한 애로 사항의 처리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로 인해 왕의 권한은 크게 줄고, 반면에 귀족과 성직자들의 권리는 크게 늘었다. 이는 훗날 의회 탄생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존 왕은 자신이 강요에 못 이겨 서명했다는 이유로 마그나 카르타를 부정했다.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청원해 1215년 8월 이 헌장이 무효라는 교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에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은 1216년 10월 존 왕의 급서하면서 끝났다.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다. 이는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근본적인 원칙을 제시했다. 이 문서의 원본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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