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 두산 대 기아 경기, 배현진의 빗나간 시구 후기[위근우의 리플레이]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던진 말은 지역혐오의 ‘헤드샷’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9일 서울 잠실에서 벌어진 두산 베어스 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서 잠실야구장이 속한 서울 송파구을 지역구 국회의원인 배현진이 홈팀 두산의 시구자로 등장했다. 본인 주장대로라면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공은 포수 미트까지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튕겼지만 무난한 시구였다. 무난하지 못한 일은 공을 던지기 전과 후에 벌어졌다. 시구 전 그가 인사말을 하던 중 야구장에선 중계방송에도 잡힐 정도의 적지 않은 야유가 나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구 후기를 남기며 “기아 팬들이 관중석 2/3만큼 꽉 메우셨던데 원정경기 즐거우셨길요”라 말했다. 이 역시 정확한 이유, 의미를 알 수 없다. 다만 많은 이들이 시구 전의 야유라는 사건과 시구 후의 기아 팬에 대한 호명을 연결해 야유의 주체가 원정 응원을 온 기아 팬인 것으로, 최소한 배현진이 그런 의도로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 당장 홈팀 응원단이 있는 1루 방향에서도 야유가 있었다는 증언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넓은 야구장의 소리를 분석해 사실을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거 대통령 발언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바이든’이라 들은 걸 배현진은 ‘날리면’이라 들은 것처럼. 이처럼 주관적으로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원정팀 기아의 팬이 정말 야구장의 2/3를 채웠는지 , 그에게 야유한 목소리의 지분이 3루 방향에 더 많은지, 1루와 비등한 수준이었는지는 애초에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더’ 큰 악의가 있는 문제지만, 만약 진실을 말했다 해도 여전히 큰 악의와 무책임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구 전 배현진이 들은 야유는 적어도 그때까진 이유가 불투명한 사건이었다. 국회의원 중에서 설화와 논란이 많은 비호감 정치인이라 그랬을 수도, 강남 3구의 부동산 계급성을 대의하는 송파 지역구 의원이 엄연히 서울 전체를 연고로 하는 팀과 팬을 대표하려는 게 어이없어서일 수도, 지난 시즌 역시 잠실구장을 쓰는 LG 트윈스의 우승을 축하하고선 두산 경기 시구를 하는 행위에 잠실 라이벌 두산 팬들이 반감을 느껴서일 수도, 혹은 LG와 두산을 논의에서 배제한 채 돔구장 신축 계획부터 발표하고 대체 구장에 대해 책임 있는 고려를 하지 않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속한 국민의힘 정치인이라 야유를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현진의 페이스북 발언과 함께 그가 겪은 야유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호남을 연고로 하는 기아 팬들이 편파적으로 벌인 공격으로 단순하게 맥락화되었다. 그가 단지 원정팀에도 덕담을 남기기 위해, 심지어 원정에서 2/3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의 열정을 치하하기 위해 굳이 기아 팬을 언급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담에 기아전에 오지 마시고 삼성전에 오세요. 오늘 기아 팬들 야유하는 거 속상하더라고요”라는 댓글에 그는 “모두가 우리 국민이신데요. 잠실에 찾아주신 VIP로 생각했습니다”라 답했다. 얼핏 팀과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을 섬기겠다는 태도 같지만, 실은 자신을 야유한 게 기아 팬들이 맞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본인은 너그럽다는 이미지를 과시한 것에 가깝다. 그가 책임 있는 정치인이었다면 기아전이라 야유를 들은 것이 아니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답해야 했다.
인삿말 도중 관중석에서 야유
다음날 SNS에 시구 후기 남기며
야유 주체 기아 팬으로 특정
일부 언론 지역 혐오 기사 양산
원인 돌아보지 않는 ‘나쁜 정치’
정치인 대중 목소리 경청 의무
배현진은 가장 게으르고 저열한 방식으로 자신이 겪은 사건을 해석하고 재구성했다. 게으른 건 여러 가능성 중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 대신 야유한 상대에게서 문제를 찾기 때문이고, 저열한 건 그 해석의 논리적 빈약함을 지역혐오의 정서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호남 사람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며 그러니 얼마든지 모욕해도 된다는 특정 혐오세력의 믿음 혹은 자신감. 앞서 실제로 야유한 게 기아 팬이냐 아니냐는 사실관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한 건 그래서다. 만에 하나 그렇다 해도 배현진은 자신을 공격한 상대들에 대한 복수로 그에 대한 혐오주의자들의 반격을 독려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보자. 주간조선은 ‘잠실서 기아 경기 시구한 배현진, 관중석에선 야유’라는 제목으로 뻔히 홈팀 두산이 있음에도 기아만을 부각했고, 뉴스1은 ‘기아 팬 꽉 찼는데 “우리 두산 파이팅”…배현진 시구에 “우~” 야유’라고, 이코노미퀸은 ‘배현진 시구 “우리 두산 파이팅”…두산 팬 박수 VS 기아 팬 야유’라며 아예 두 팀 간 갈등으로 해석해 마치 기아 팬들이 원정에서 숫자를 믿고 무례를 범한 것처럼 타이틀을 뽑았다. 강원일보는 ‘프로야구 시구 나선 배현진, 광주 연고 기아 타이거즈 팬들로부터 야유 받아’라며 역시 기아 측에서 야유가 나왔다는 걸 기정사실화하는 동시에 굳이 ‘광주 연고’라는 것까지 부연했다. 데일리안은 제목에 기아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기사 말미에 “관중석에선 ‘우~’ 하며 야유가 나왔다. 기아 타이거즈는 연고지가 광주시”라며 노골적으로 지역혐오를 자극했다. 유사 언론인 위키트리 역시 ‘국힘 배현진 의원 시구에…기아 팬들 온갖 야유 쏟아졌다’라고 마치 여당 의원이라 부당한 야유를 들은 것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다. 프로야구 인기에 편승해보겠다던 의도는 그의 시구처럼 빗나갔지만, 그의 게시물 행간에 숨은 지역혐오 독려의 메시지는 언론들이 귀신처럼 캐치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그냥 무안하고 끝날 수도 있는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위해,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일을 편의적으로 단언하고 지역혐오를 끌어와 갈라치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나쁜 정치인으로서의 배현진을 비판하기란 어렵지 않다. 혐오 정서에 기생해 조회수나 빨아먹은 나쁜 언론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부연해야 할 건, 순수한 스포츠의 공간인 야구장을 배현진과 언론이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치적 공간인 야구장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소리나 입장을 배제하고 공격하기 위해 스포츠의 순수성을 이용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기아 팬으로만 한정해도 그렇다. 조귀동 작가가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밝히듯 “해태 타이거즈가 원정 경기를 하는 잠실야구장에서 호남 사람들은 평소 쓰던 말투 대신 본래의 전라도 사투리를 마음 편히 썼다. (중략) 텔레비전 속 삼류 인생들이 호남 사투리를 썼을 때, 여기서만큼은 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승리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야구장이 탈정치적인 공간일 수 있겠는가. 배현진을 옹호하기 위해, 호남의 기아 팬들이 보수정당 정치인에게 야유를 한 게 편파적이며 정치로 야구장을 오염시켰다고 주장하는 건,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과 별개로 서울에 모인 기아 팬들의 야유에 담길 수 있는 역사적, 계급적, 정치적 문제의식을 단순화해 폄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배현진은 나쁜 정치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정치인을 향한 대중의 야유는 하나 이상의 정치적 메시지이며 정치인이라면 여러 오독의 가능성 안에서도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최대한 옳은 수신을 하려 노력해야 한다. 기아 팬을 지역적 편파성이라는 기준으로 납작하게 해석할수록, 기아 타이거즈 혹은 호남, 혹은 광주로 표상되는 정치적 주체들의 목소리는 경청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이 되어 배제된다. 이것은 지금껏 호남의 목소리를 떼쓰기, 폭도, 거짓말로 매도해온 지역혐오의 담론과 쉽게 호응한다. 배현진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해 호남 혐오의 의도를 드러낸 기사들에 신나게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댓글이 모이는 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과연 그가 정치인으로서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야구에선 머리에 맞힌 빈볼은 의도했듯 의도하지 않았든 무조건 퇴장으로 이어진다. 야구장을 찾는 정치인들이 그것 하나는 배워 가면 좋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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