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노트] 돈키호테는 무모한 행동주의자? 삶의 도전자!
어떤 문학 작품들은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써만 그 가치를 온전히 음미할 수 있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작품이 실은 이에 해당한다. 여타의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서사 창작물을 접하는 현대인에게 고전이 ‘유명한 이유를 모르겠는’ 지루한 책이 되곤 하는 것도 대개 ‘읽기’의 어려움과 관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돈키호테’의 혁신성은 서양 문학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이 최초의 근대소설이 얼마나 개성적이었는지를 깨달으려면 먼저, 그 전까지의 문학이 대단히 정형화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시 또는 극 형식에 머물렀음을 알 필요가 있다. 천편일률적 문체와 내용을 되풀이한 중세 기사 문학은 장르의 규범에 예속되어 있었다. 역사에서 소재를 따온 ‘롤랑의 노래’나 ‘광란의 오를란도’ 같은 유려한 영웅시들이 드물게 창작되었지만, 이들은 ‘돈키호테’보다 더 까마득히 잊혔다.
편력(遍歷) 기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돈키호테는 집에서 도보로 사흘 거리보다 멀리 가지 못한다. 그는 괴물도 용도 없는 세상에서, 애먼 포도주 통이나 깨부수고, 숱하게 얻어맞고 다니다 귀향한다. 그는 보통 사람이고, 자아를 가졌으며,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상의 도전자다. 이런 인물이 무모한 행동주의자의 대명사인 것은 이 작품을 텍스트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독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사건이 아니라, 그것이 이야기되는 방식이다.
‘돈키호테’의 인물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문학의 번역, 전승(傳承), 독창성, 개연성과 타당성 문제를 논한다. 그들은 ‘홍길동전’의 시대에 뛰어든 현대인처럼, 양식화된 서사의 진부한 모순들을 지적한다. 이야기 속 ‘영웅’은 어째서 먹지도 싸지도 늙지도 잠들지도 않는가. 이에 부응해 ‘돈키호테’는 매 순간 육신의 욕구들을 돌봐야 하는, 실존재인 ‘인간’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제시한다. 즉, 이 평범한 인물이 겪는 고난은 볼품없는 우리네 일생의 패러디고, 그래서 우스꽝스럽지만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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