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색’을 입은 옷…여름 멋짐이란 이런 것

서정민 2024. 6. 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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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 코스, 일본 염색 장인과 협업
줄무늬 문양의 ‘테스지’ 시보리를 이용한 카프탄드레스. 소매 부분에서 매우 아름다운 볼륨감이 연출된다. [사진 코스]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 코스(COS)는 시간이 지나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타임리스’ 디자인과 디테일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브랜드에선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을 갖춰야 한다. 코스가 전 세계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지속해온 이유다.

코스는 브랜드 론칭 이래 다양한 아티스트, 갤러리,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등과 파트너십을 맺어왔다. 팬데믹 이전까지는 그들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고 전시 및 작품 보존을 후원하는 활동에 주력했다면, 2021년부터는 구체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에 직접 적용하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의 사진가 목정욱과, 2022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진가이자 아티스트인 레아 콜롬보와, 2023년 여름에는 영국의 아티스트 스티븐 도허티와, 2023년 겨울에는 한국의 아티스트 강서경 작가와 협업을 진행했다.

코스, 전 세계 아티스트들과 협업 지속

코스 디자인 디렉터 카린 구스타프손(왼쪽)과 시보리 장인 타바타 카즈키. [사진 코스]
코스의 디자인 디렉터 카린 구스타프손은 “우리의 목표는 시간을 넘어선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억지스럽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에포트리스(effortless·대충 걸쳐 입은 듯하지만 사실은 잘 계산된 스타일링)’ 요소와 기억에 남는 작은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흉내내기보다 직접 협업하는 방식을 추구한다”며 “오늘날 이러한 예술적 재능이 매우 귀하기도 하지만 코스의 철학과 새로운 관점을 전달하기에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5월 30일 일본 교토에서 진행된 글로벌 미디어 행사에선 ‘코스×타바타 시보리’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다. 교토 출신의 전통 염색 장인 타바타 카즈키(44)씨의 시보리 기술을 옷·가방·스카프 등에 반영한 컬렉션이다.

일정 간격으로 실을 묶은 후 염색하면 줄무늬 문양의 ‘테스지’ 시보리를 완성할 수 있다. [사진 코스]
일본의 전통 염색 기법인 ‘시보리(일본어로 쥐어짜거나 비트는 것을 의미한다)’는 천을 묶거나 접고, 혹은 꼬거나 구기고, 바느질을 넣는 등 독특한 주름을 만들어 염색하는 방법으로 매혹적인 문양을 완성시킨다. 시보리의 역사는 1000년을 이어왔는데, 특히 깨끗하고 큰 강이 흐르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부터 교토에 수많은 공방이 자리 잡았다.

타바타씨 역시 현재 교토에서 ‘타바타 시보리’ 공방을 운영 중인데, 그는 이 분야의 마지막 장인으로 꼽힌다. 장인들이 노령화되고 시보리 염색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교토에서도 시보리 공예 후계자를 찾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교토의 시보리 장인은 10여 명뿐. 그 중 타바타씨의 아버지(74)가 가장 나이가 어리고, 그 밑으로는 타바타 카즈키씨가 유일하다.

타바타씨 역시 젊어서는 가업을 잇는 데 관심이 없었다.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음향과 조명을 전공하고 졸업 후 관련 업계에서 일했던 그가 진로를 바꾼 계기는 시보리 장인었던 삼촌이 돌아가신 후 관련 염색 도구를 모두 처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다. “더 이상 이 도구들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건 전통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통에는 지혜와 기술, 시행착오, 그리고 선조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기계와 컴퓨터로 모든 것이 구현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시보리 염색에는 수작업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미래 세대에 이를 전달하기 위해 시보리 기술을 보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의 목정욱·강서경 작가와도 협업

상하단 컬러 매치와 줄무늬 문양이 모래톱 위를 오가는 부드러운 파도를 연상시키는 셔츠와 팬츠. [사진 코스]
타바타씨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과 독학으로 자신만의 시보리 기술을 완성했다. 현재 전해지는 시보리 염색 기법은 100여 가지인데,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은 1년에 최대 2~3가지 정도뿐이다. 천을 어떻게 접고 비틀어야 원하는 문양이 만들어지는지, 염색은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 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타바타 시보리’ 컬렉션에 사용된 기술은 눈꽃 문양의 ‘세카’ 시보리와 줄무늬 문양의 ‘테스지’ 시보리다.

협업의 시작은 코스 디자인 팀이 이번 시즌 컬렉션 테마를 ‘물’로 정하면서였다.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감과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찾던 디자인 팀이 SNS에서 타바타씨의 시보리 작업을 보고 협업을 제안한 것. 1년을 함께 의논한 코스 디자인 팀은 타바타씨의 오리지널 아트워크와 색감·프린트·원단까지 최대한 비슷하게 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타바타씨는 “보통 기모노에 사용되는 프린트는 어떤 시보리 염색 기법을 사용했는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컬러도 많이 보이지 않는데, 반면 코스에 사용된 프린트는 본래의 시보리 염색 기법을 뚜렷하게 제대로 보여준다”며 “어쩌면 실제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정말 완벽한 협업”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일본의 전통 공예 기술과 코스의 현대 디자인이 만난 이번 컬렉션은 블루, 오렌지, 브라운 등 부드럽고 차분한 컬러 톤과 함께 타임리스 스타일로 완성됐다. 타바타씨는 “전통은 시대에 적응하면서 또 발전해 나간다”며 “이번 코스와의 협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본의 전통 시보리 기술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한편 이번 교토 행사에선 기자들과 교토 예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도 진행됐다. 타바타씨가 직접 ‘세카’ 시보리 기법을 시연했고, 워크숍 참여자들은 각자 ‘테스지’ 시보리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코스 관계자는 “젊은 세대가 시보리 같은 전통 공예에 관심을 갖고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워크숍 취지를 밝혔다. ‘코스×타바타 시보리’ 컬렉션은 6월에 온라인 및 일부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기모노 시보리 염색만 한 달…문양 100여 가지, 가문마다 비법 있어

다리미를 이용해 천을 누르듯 삼각형으로 접은 후 염색하면 눈꽃 모양의 화려한 ‘세카’ 시보리 문양을 완성할 수 있다. [사진 코스]
다리미를 이용해 천을 누르듯 삼각형으로 접은 후 염색하면 눈꽃 모양의 화려한 ‘세카’ 시보리 문양을 완성할 수 있다. [사진 코스]
1000년 전통의 교토 시보리 염색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한 사람이 제작할 수 있는 양이 매우 한정적이다. 타바타 카즈키씨는 “교토에선 시보리 염색 원단으로 주로 기모노와 유카타를 만드는데, 일반적으로는 한 달 동안 원단 100롤(한 롤당 13m)을 접고, 한 달 동안 염색만 한다”고 했다.


시보리 염색 기술의 예술성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되는 문양에서 빛난다. 눈꽃 문양의 ‘세카’, 줄무늬 문양의 ‘테스지’, 모자 문양의 ‘보오시’, 우산 문양의 ‘카사마키’, 문어를 닮은 ‘타코 보오시’ 등 100여 가지가 전해지며 장인들마다 오랫동안 가문에서 전해진 비법을 갖고 있다. 다른 가문의 장인이 이 비법을 알려면 수하의 제자가 되거나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세카’ 시보리는 천을 삼각형으로 접은 뒤 나무판자로 단단히 고정한 다음 모세관 기법을 사용해 염색해야만 독특한 눈꽃 무늬를 만들 수 있는데 원단이 길고 넓어질수록 염색이 까다롭다.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판자 사이 삼각형 천은 길이가 매우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로 1m, 세로 2m 원단이다. 원래는 나고야에 거주하는 시보리 장인의 고유한 전승 기술이지만, 타바타씨가 2년간 1000여 개의 원단을 염색하며 실패를 반복한 끝에 자신만의 눈꽃 문양을 완성시켰다.

타바타씨는 “전통 기법에는 각 문양마다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각 작품 속에 숨겨진 예술성을 감상하고 장인 정신을 인정할 수 있도록 전통 기법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교토=서정민 기자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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