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의 영향 받은 노벨상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회고록인데도 책 말미에 주제와 인명으로 나뉜 색인이 제법 길다. 개인의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인물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20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친 세계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올해 90세인 지은이는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후생경제학자다. 후생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을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고, 사회구성원의 복리 증진과 소비효용 증대를 추구한다. 지은이는 저소득국가의 경제·사회 개발을 연구하는 개발경제학과 보건의료 분야의 복리를 추구하는 보건학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인도 동북부 벵골 지역에서 태어나 캘커타대를 마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옥스퍼드·런던정경대(LSE)와 인도의 여러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주목할 점은 그가 미국 하버드대에선 경제학과 함께 철학도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인도 출신으로 평생 인도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는 인도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살았다. 게다가 무신론자다. 하지만 힌두교는 물론 이슬람과 불교까지 두루 파고들며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어왔다. 자신의 뿌리인 인도 대륙의 사상·문화적 바탕 위에서 세계를 접하고, 사랑하며, 연구해온 20~21세기 글로벌 지성인의 면모다.
그는 인도 시인 타고르를 좋아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타고르가 보여준 ‘억압받고 밀려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지은이의 후생경제학·개발경제학 연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서양이 타고르를 오해했다고 안타까워한다. 타고르가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을 그린 『키탄잘리』라는 작품으로 서양에 ‘위대한 신비주의자’로만 알려져, 세상과 이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개탄한다. 서구의 시각은 타고르를 다층적이고 창조적인 예술가이자, 명민하고 이성적인 성찰자로 평가하는 인도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르다.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영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 미국 MIT의 폴 새뮤얼슨, 스탠퍼드의 케네스 애로우 등 세계적 경제학자들과의 만남도 그렸다. 단순한 개인적 인연을 회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장들의 학문적 결함까지 비평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예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새뮤얼슨이 후생경제학 부분에서 미진한 점이 있었다고 비판하는 식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지성인의 길을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대학 진학 직전인 18세 때 피부·입술·입·식도 등에 발생하는 편평세포암종이라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입 안에 혹이 자라는데도 의사들이 진단을 내리지 못하자 그는 도서관의 의학 서적을 뒤져서 자신의 병을 스스로 확인했다. 뼛속까지 이성·합리·지성으로 가득 찬 인생이다. 비판할 때는 비판하면서도, 자신에겐 머물러온 모든 곳이 고향이고 경험한 모든 것이 멋있고 아름답다는 지은이의 담담한 고백이 울림을 준다. 원제 A Home in the World: A Memoir.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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