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가라앉은 광화문광장, 바람에 날리는 오페라 향기
아침드라마가 아니라 오페라 주인공을 보며 내뱉은 말이다. 이 남자, 군대 간 사이 시집간 첫사랑과 밀회하며 현 애인을 구박하다 첫사랑 남편 손에 죽는다. 귀족들의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발에 차이는 아침드라마 소재의 오페라를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1000명의 시민들과 공분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11~12일 공연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얘기다.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 산하 서울시오페라단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야외 오페라다. 광장으로 뛰쳐나온 무료 공연이라는 형식을 넘어, 베리스모 오페라를 대표하는 마스카니 작품인 만큼 내용적으로도 오페라의 문턱을 없앴다. 때 아닌 폭염이 가라앉고 해질녘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광장에서, 무대 세트를 대신한 LED 스크린 속 거대한 클림트, 에곤 쉴레 등의 명화 영상까지 즐겼다.
테너 정의근·이승묵, 바리톤 유동직·박정민, 소프라노 조선형 등의 월드클래스 가창은 물론, 영화 ‘대부3’에 삽입되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히는 간주곡을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로 듣다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티켓 오픈 2분 만에 2000석이 전석 매진될 만큼 인기였다. 초등학생 자녀 2명과 과자를 먹으며 관람한 한 관객은 “SNS로 알게 되어 광클릭으로 간신히 티켓을 잡았는데,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관객만 즐거운 건 아니었다. 제작자도 출연자도 들떠 있었다. 시민 123명으로 꾸려진 시민예술단이 저 유명한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부르고, 전직 승무원 동아리가 소품인 부활절 계란을 객석에 프로답게 나눠주며 분위기를 달궜다. 지난해에도 참여했다는 시민합창단의 고태호씨는 “일상이 바빠서 오페라를 보러 가지도 못했는데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영광스럽다. 이탈리아어 노래를 공부한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매년 했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이탈리아어 노래를 연습시키기 힘들었지만 이 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과 그 열정에 거꾸로 내가 감동했다”고 말했다.
11일 공연을 관람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에 올린 영상에서 “서울시민 모두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꿈꾸곤 하는데 그 현장을 봤다”고 말했다. 오페라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그가 꿈꾸는 ‘문화도시 서울’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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