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법 개정과 배임죄 완화, 이유 있지만 더 여론 수렴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의 직무 충실성 대상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도 포함하는 상법 개정의 보완책으로 ‘배임죄 폐지’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배임죄 처벌 수위가 한국만 유독 높다면서 “배임죄를 유지할지 폐지할지 정해야 한다면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이 배임죄 소송 남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자 배임죄 폐지·완화라는 보완책을 제시한 것이다.
금융 당국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을 위해 이사의 충실한 직무 수행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법 개정이 이뤄지면 상장 기업의 53%가 인수 합병 계획을 재검토·취소하겠다는 대한상의 조사가 나오는 등 기업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수 합병이나 투자 판단 등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면 배임죄 고발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직자 등의 배임죄는 분명한 범죄다. 하지만 한국의 배임죄는 형법뿐 아니라 상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도 규정돼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혹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기업인들의 경영적 결정에 대해서도 결과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많다. 금감원장은 배임죄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배임죄 구성 요건에 사적 이익 추구 등 구체적 사안을 추가해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상법상 특별 배임죄라도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과도한 배임 처벌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있는 만큼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급하게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금감원장은 “이사회 주주의 충실 의무는 선진국에서 당연히 여기는 것”이라고 했지만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나라가 대부분이다. 한국 주가가 저조한 것은 상법상 ‘주주에 충실’ 조항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이사회가 본연의 역할을 못 하고 심지어 대주주가 이사회와 경영을 다 장악하는 후진적 지배 구조 탓이 크다. 상법 개정과 기업 배임죄 완화는 이유가 있지만 더 여론을 모으면서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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