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한 서울대생
‘김을파손’ ‘수박겁탈기’ 사연도 넘쳐
AI 시대에 터진 문해력 논쟁
매일 신문만 읽어도 나아질 텐데
지난 며칠 온라인 세상을 흔들었던 두 글자를 혹시 아시는지? 답은 금일(今日). ‘지금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이란 뜻을 품은 이 예쁜 한자어가 최근 엑스(옛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든 주범이 됐다.
사연은 이렇다. 서울대의 한 조교가 학생들에게 이런 공지를 남겼다. “금일 자정 이후로 과제물을 제출하면 매일 점수가 20점씩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하기 바랍니다.” 다음 날 한 학생이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물었단다. “과제 제출 금요일 아녜요?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잖아요.” 조교는 답했다. “금일은 금요일의 줄인 말인 ‘금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뜻입니다.” 학생은 반박했다. “평가자라면 오해 소지가 있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
에피소드가 공개되자 온라인 반응도 달아올랐다. 한쪽에선 “아니 ‘금일’ ‘명일’ ‘익일’ 같은 말도 모르는 대학생이 정말 있냐” “중·고등학교에선 뭘 가르치는 거냐” “이게 대체 웬 하향 평준화냐”고 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조교의 배려가 부족했다.” “AI가 대세이고 법원 판결문도 쉽게 바뀌는 세상에 저런 한자어를 계속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돌아보니 이런 사연이 한둘은 아니다. 최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선 ‘내가 겪은 황당한 어휘력 사건’을 게임처럼 주고받는 게 유행이다. ‘심심한 위로’를 ‘지루한 위로’로 이해했다거나, ‘사흘’을 ‘4일’로 알아들었다는 유명한 사례로도 요즘 이 온라인 배틀(battle)을 이기긴 쉽지 않다. ‘김을 파손(기물 파손을 오해함)’ ‘장례 희망(장래희망을 잘못 씀)’ ‘수박겁탈기(’수박 겉핥기’를 잘못 씀)’ ‘눈을 부랄이다(’눈을 부라리다’의 실수)’까지 나오는 판이다.
물론 요즘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어휘력이나 맞춤법을 지적하면 아마도 얼간이일 것(People who point out typos or voca may be jerks)’이란 주제로 글이 올라와 논쟁이 뜨거웠다. 외국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에 붙는 자막 철자가 틀리거나 단어가 잘못돼 댓글 창이 시끄러워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조만간 치를 미(美)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한때 엑스에 ‘counsel(변호인단)’을 ‘council(위원회)’로 잘못 써서 놀림받지 않았나. 조지 부시의 러닝메이트였던 댄 퀘일 부통령이 열두 살 초등학생이 쓴 ‘potato(감자)’ 철자를 ‘potatoe’로 고쳐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텍스트보다는 영상, 긴 글보다는 쇼츠가 대세인 세상, 어쩌면 이런 해프닝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AI가 웬만한 철자 오류는 잡아주고 필요한 글도 이젠 대신 써주는 요즘, 문해력(文解力)과 어휘력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럴 땐 챗 GPT와 조금만 대화해 보라고 하고 싶다. 의외로 AI는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AI에 명석한 답을 얻길 원한다면, 그만큼 질문하는 사람 역시 그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에도 문해력을 키우고 싶다면 최소 하루 20분 정도는 글을 꾸준히 읽으라고 권한다. 신문을 펼치면 보이는 손바닥만 한 박스 기사 서너 건 정도는 충분히 읽을 시간이다. 디지털 시대에 웬 ‘일해라 절해라(이래라저래라)’ 소리 아니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만 해줘도 ‘금일 논쟁’은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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