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유승훈]영일만 프로젝트, 정보 투명 공개해야 뒤탈 없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 2024. 6. 1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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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재정 투입 유전개발, 정보 공개는 당연
채산성 등 분석 자료 제출 거부로 의혹 확산
정치공방 이슈 돼버려 사업 리스크 더 커져
정보 공개해 충분한 공론화 거친 후 시추를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
이달 3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 더 많은 탐사자원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대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치로 따져 보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밝히자 매장량 가치가 2200조 원에 달한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천연가스를 국내에 공급하는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의 주가는 바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결국 유망 구조를 도출한 미국 액트지오 대표인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가 5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그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왔다면서도 한국석유공사와의 비밀 서약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고 했다.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브레우 박사는 분석 결과를 설명하긴 했지만 짧은 기자회견으로 의혹이 해소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기자회견 중 가스공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아브레우 박사가 찾았다는 7개의 유망 구조는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큰 그릇을 의미한다. 사실 그 그릇 안에 석유-천연가스가 있을지 없을지는 시추탐사를 해야만 알 수 있다.

언론과 야당에서는 매장 가능성과 경제성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영업 기밀’ 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련 자료의 공개는커녕 국회 제출도 거부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액트지오를 둘러싼 의혹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가 “유망 지역이 아니다”라며 작년에 철수한 배경에 대해 국민들의 의문도 커졌다. “현재 단계에서, 그것은 희망과 꿈에 불과하다” “정치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는 세계적 신용평가회사 S&P 글로벌의 냉정한 지적도 공개되면서 불안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액트지오가 어떻게 용역업체로 선정되었는지, 성공 확률 20%는 어떻게 도출된 것인지, 140억 배럴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경제성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하다. 물리탐사 자료의 해석 과정 및 결과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검증은 받았는지,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등 관련 정보 및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도 계속 커질 것이다.

국민의 60.1%가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 기대감이 낮다고 판단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명쾌한 자료 공개가 없다 보니, 어느덧 이 이슈는 자원 이슈가 아니라 1일 1의혹이 제기되는 정치 이슈가 되어 버렸다. 예컨대, 이 프로젝트를 다루는 방송 시사프로그램 패널의 상당수는 전문가보다 정치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동해에서 총 48회의 시추탐사가 있었지만 이렇게 논란이 됐던 적은 없다. 그중 단 2회만 상업생산으로 연결돼 성공률이 4%에 불과했어도 말이다. 자원 개발은 원래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라 이 정도의 성공률은 별문제가 안 된다. 이번 건도 그냥 매 단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졌으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1차 시추에서 실패한다면, 실무 공무원과 시추탐사선을 타고 가족들과 떨어져 고생할 엔지니어의 책임만을 추궁할 가능성이 높다. 최소 5회에서 10회까지는 시추탐사를 해야 본격적인 개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잘못하면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도 찾지 못하고 끝나 버릴 수도 있다.

정부와 공기업이 대규모 재정이 투입될 사업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래야 시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뒤탈이 적을 것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둘러싼 과학적 자료와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온갖 의혹과 억측이 제기되면서, 국내 자원 개발이 정치 공방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정치 이슈가 돼 버린 상황에서, 정부는 외국 업체와 실무선에만 책임을 미뤄둘 게 아니라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공개된 정보를 가지고 충분한 공론화를 거친다면, 국민적 의문이 해소되면서 정치 갈등이나 소모적 논쟁이 잦아들 것이다. 그 이후에 시추탐사에 착수해도 늦지 않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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