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결정을 배임죄로 과도하게 처벌"… 상법개정 걸림돌 제거

김태성 기자(kts@mk.co.kr), 이승윤 기자(seungyoon@mk.co.kr) 2024. 6. 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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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내는 상법 개정
獨, 업무·상법상 배임죄 없어
美도 개인간 손해배상 처리
李 "경영진이 의무 다했다면
손해 끼쳐도 처벌 안받아야"
"배임죄 재판 1심·2심서
유·무죄 엇갈리는 경우 많아"
법조계도 "개편 필요" 목소리

◆ 배임죄 폐지론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안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주요 정부 관계자 중 처음으로 배임죄 폐지를 주장한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할 정도로 배임죄 강도가 가장 센 한국의 현실이 정상적인 기업 경영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문제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에 회사법상 특별배임 규정뿐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죄 규정까지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형법 355조 2항에서 배임, 356조에서 업무상 배임을 규정한다. 355조 2항은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할 때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이득을 취득하게 만들어 손해를 끼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356조는 업무상 배임죄를 저지르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와 별도로 상법 622조의 특별배임죄로는 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가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업무상 배임죄에 가중 규정되는 특경법은 위반 액수가 50억원 이상일 경우 살인죄와 똑같은 형량인 5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을 적용한다.

주요 선진국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처벌이다. 독일은 형법상 배임죄가 있지만, 업무상 배임죄나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없다. 미국도 굳이 배임죄를 법에 명문화하지 않고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개인 간 손해배상으로 관련 이슈를 해결한다. 여기에 배임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재계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지적해 왔다.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의 범위가 워낙 넓고, 손해의 범위도 넓어 구형과 선고 과정에서 '고무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배임죄로 인한 형사처벌 우려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까지 한국 사업이 위축될 정도의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배임죄 폐지론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이 원장은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면서도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익이 균형 있게 고려됨으로써 서로 윈윈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이지, 지배주주의 긍정적인 역할을 폄하하거나 불리한 부담을 주자는 취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모든 경영활동에 주주충실 의무가 적용되면 기업경영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실제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일 것"이라며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형법의 배임죄 폐지가 어렵다면 상법의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거나, 경영 판단원칙 같은 적용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배임죄 처벌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 원장은 "형법상 배임죄를 포함해 배임죄를 다 폐지하는 방안 내지는 구성요건을 바꾸는 방안, 회사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는 방안, 배임죄 폐지 없이 경영판단원칙 의무를 다양하게 하거나 예측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해관계자로부터 독립된 제3자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든가 통상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일부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주식매수 청구권을 주는 등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내용이 경영판단원칙으로 잘 구성이 됐다면 (경영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수준의 정상적인 경영 판단에 대해선 민사뿐 아니라 형사 책임까지 면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모호해 법원도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봐야 된다고 인식돼 왔고 무죄율이 보통 범죄보다 4배 정도 높을 정도로 판사들에게도 어려운 죄"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해외에서는 배임죄가 있어도 실제 처벌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한국은 배임죄 고발이 남용되고 너무 과도하게 운영돼 온 측면이 있는 만큼 폐지도 대안으로 고려해볼 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기업 체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경영판단원칙을 100%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예 배임죄를 없애버리면 거수기 이사회에 대한 견제장치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편 이 원장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법인세 세액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최대 주주에 대한 할증폐지, 기업 상속공제 확대 등은 강하게 필요하다는 의견"이라며 "과거 유럽처럼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의 활력을 꺾고 해외로의 자본 유출을 초래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시장 선진화와 연결된 세제 개혁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놓고 일부에서 제기한 제도에 대해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이 원장은 "집중투표제 강화, 황금 낙하산 제도 등은 현실적으로 다소 의문이 든다"며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배임죄 폐지 등) 그런 방식으로 이사회가 균형감 있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합리적·현실적으로 제도 논의 과정에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김태성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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