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완전 단전" 묵살 12분 뒤 감전사…유족에 남겨진 건 찢긴 작업복뿐
"빨리 해주길" 업무 지시에 작업 강행
지난 일요일 새벽, 서울 연신내역에서 고압 케이블 작업을 하던 50대 직원이 감전돼 숨졌습니다. 왜 이런 죽음이 있어야만 했는지 추적해 보니 숨진 직원이 전기를 완전히 끊어달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로부터 12분 뒤 감전돼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JTBC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유족의 뜻을 이어받아 고인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최연수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서울 연신내역 지하철역사 전기실을 29년 동안 맡아온 관리소장 이종호 씨입니다.
지난 주말 안전하게 점검하기 위해 전기선을 분류하는 스티커를 붙이다 감전돼 숨졌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사고 직후 만든 사고일집니다.
새벽 12시 30분, 먼저 2호계 전기를 단전한 뒤 50분 동안 작업을 했습니다.
새벽 1시 24분, 이씨는 1호계와 2호계의 전기 모두 단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완전단전을 할 수 있는 날이 아니라며 거절을 당했습니다.
결국 작업이 끝난 2호계에는 전기를 켜고 1호계만 단전한 채 작업을 하다 12분 뒤인 새벽 1시36분 숨졌습니다.
단전과 관련된 내부규정은 없는 걸로 파악됩니다.
내부 직원들은 위험하지만 관례적으로 부분단전만 하고 전기작업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A씨/서울교통공사 직원 : 완전 단전으로 하는 경우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아주 특별하게 확실하게 정기점검을 해야 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제 부분 단전으로…]
완전히 단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씨는 작업도 혼자 했습니다.
교통공사 규칙에 따르면, 고압전기작업엔 반드시 최소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른 직원 1명이 같이 가긴 했지만 서로 아예 다른 곳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답하기 어렵다"고만 밝혔습니다.
[앵커]
보신 것처럼 2인 1조로 점검해야 한다는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남겨진 유족은 사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조차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습니다. 유족에게 남겨진 건 이종호 씨의 찢겨진 작업복뿐입니다.
계속해서 최연수 기자입니다.
[기자]
사고 당일 업무지시는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유족 : (함께 작업을 한) 직원 한 분이 '그게 원래는 그날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걸 좀 빨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공문이 내려와서…']
2인 1조로 점검을 해야 한다는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씨/서울교통공사 직원 : (전선 스티커 작업) 업무를 (2인 1조로) 했어야 되는 일인데 그날뿐만 아니라 늘 소화해야 될 업무는 많고 시간은 쫓기고…]
원래 해야 하는 정기점검에 전선을 분류하는 작업이 추가됐습니다.
2명이 갔지만 한 명은 정기점검을 다른 곳에서 하고, 숨진 이씨 혼자 전선 분류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족 : 각자 들어가느라고 얘네 아빠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볼 수도 없었고 다쳐서 악소리 나고 비명소리 나고 쿵 쓰러지는 소리만 들었지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고 직전에 1명이 더 왔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완전단전 요청이 거부되고도 일이 줄줄이 밀릴 수 있다는 부담감에 어쩔 수 없이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유족 : 이 일이 밀리면 또 다른 일이 밀리니까 직원들은 그때그때 다 해치워야 되고 그 일을 자기로서는 자기 직책에서 할 수밖에 없을 거 아니에요.]
유족은 사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유족 : 자꾸 (회사가) 원하는 걸 말씀해 보라는 거야. 내가 지금 우리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데 뭘 원해? 제가 원하는 거 하나죠. 살아서 와야지.]
이렇게 이씨는 검게 그을려 찢어진 작업복만 남긴 채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영상디자인 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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