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여긴 못 들어가"…'연 560억' 대박 회사의 비밀
(下) 韓 석화업계 '고부가 스페셜티'에 사활
대통령도 못들어간 비밀기지…그곳에 '석화 캐시카우' 있다
日 기술장벽 뚫은 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 개발 13년만에 好실적
"공장 풀가동…생산 3배 늘릴 것"
지난 13일 찾은 전북 전주 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 공장. ‘방사 공정’이란 팻말이 걸린 공장으로 눈을 돌리자 안내를 맡은 최송주 공장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공개하지 않은 특급 보안지역”이라며 마무리 공정 파트로 기자를 이끌었다.
안에 들어서니, 검은색 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폴리아크릴로니트릴 섬유를 쪼개 머리카락의 10분의 1 굵기(7마이크로미터)로 뽑아내는 방사 공정과 이를 1500도로 가열해 섬유 안에 탄소만 남기는 탄화 공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이렇게 만든 탄소섬유는 철보다 훨씬 가벼운데도 강도는 10배나 세 항공기 외관 구조물, 수소탱크 등에 쓰인다.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뜻하는 ‘스페셜티’(특수 소재)의 하나다. 이 공장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가동률을 70% 수준으로 끌어내린 범용 석유화학 제품과 달리 ‘완전가동’ 중이다. 최 공장장은 “연 9000t인 생산량을 2028년까지 세 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탄소섬유는 중국발(發) 공급과잉 위기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대처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이미 중국에 따라잡힌 범용 제품 생산을 최소화하는 대신 스페셜티 제품에 역량을 집중해 중국보다 반발짝 앞서가야 한다는 얘기다.
○작지만 탄탄한 수익 내는 韓 기업들
일본 도레이 천하이던 탄소섬유 시장에 효성이 도전장을 내민 건 2008년이다. 범용 석유화학 제품은 언젠가 중국에 잡아먹힐 게 뻔한 만큼 스페셜티 제품으로 방향을 튼 것. 효성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2011년 일본,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2013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2020년까지 적자 사업부였던 탄소섬유는 지난해 560억원의 영업이익을 효성첨단소재에 안겨준 ‘효자’가 됐다. 최 공장장은 “탄소섬유는 제품의 질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쉽게 못 들어온다”며 “매년 10~20% 성장하는 분야라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사업 재편에 성공한 기업은 효성첨단소재뿐만이 아니다. 태양광 필름 등에 쓰이는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소재 분야의 강자인 DL케미칼도 그런 회사 중 하나다. 고무와 플라스틱 성질을 함께 지닌 POE는 기존 태양광 필름보다 충격에 강하고 전력 손실도 줄여준다. DL케미칼은 POE가 향후 태양광 필름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보고 작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전체 매출에서 POE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됐다. DL케미칼이 올 1분기 매출 1조2297억원, 영업이익 1178억원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스페셜티도 중국이 추격 중
롯데정밀화학은 전통 석유화학의 틀에서 벗어난 신제품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종이 원료로 쓰이는 셀룰로스를 가공해 의약용 캡슐, 식품용 첨가제 등으로 수요처를 넓혔다. 이 또한 아직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다. 고객의 수요에 맞게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어서 중국 특유의 물량 공세가 통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 1분기 케미컬 부문에서 90억원가량 적자를 냈지만, 셀룰로스 덕분에 그린 소재 부문에선 200억원의 이익을 냈다.
금호석유화학도 중국의 타깃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석유화학 기업으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이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타이어용 합성고무 시장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안전이 중요한 산업이다 보니 중국산 합성고무를 찾는 타이어 회사나 자동차 회사는 거의 없다”며 “그 덕분에 중국의 합성고무 원료배합 기술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했다.
하지만 스페셜티 제품이라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범용제품을 장악한 중국이 스페셜티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중국이 올해부터 생산에 들어간 POE가 대표적이다. 덩치 큰 태양광 업체가 죄다 중국에 있는 만큼 중국의 ‘애국 소비’와 맞물리면 한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이유로 재활용 플라스틱도 향후 중국이 주도권을 잡을 분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스페셜티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에 앞서고 있지만, 그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며 “중국에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사업 재편을 통해 스페셜티 분야에 더욱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전주=성상훈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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