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대선까지 가버린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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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나치게 멀리 가 있다.
대선까지 너무 빨리 달려가버린 한동훈의 조바심이 검찰개혁에 힘을 보태는 꼴이 됐다.
채점표가 차곡차곡 채워지는 중이다.
과연 한동훈에게 그럴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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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나치게 멀리 가 있다. 벌써 대선 중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재판은 계속 진행되며, 만약 유죄를 받으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고 헌법 제84조에 대한 해석을 사흘 연속 내놓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대선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던 의제를 제법 힘줘서 내놓는 바람에 여러 해석을 낳았다.
새삼 각인된다. 그가 기획수사에 능한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과, ‘이재명 대통령’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는 것. 둘 다 그에게 유리한 메시지는 아니다. 한 꺼풀 들추면 ‘위험한 질문’이 꼬리를 문다. 과연 검찰의 기소 여부가 국민이 투표로 내린 선택에 앞설 수 있나. 만약 검찰권을 쥔 자가 정적을 죽이기 위해 기소권을 남용하면 어떻게 되나.
정작 이재명 대표 쪽은 무반응이다. 타격감 ‘1도’ 없는데 계속 때리는 것을 뭐라 불러야 좋을까. 이재명을 지지하든 안 하든 조국이 좋든 싫든, 검찰이 수상하고 괴이해 두 사람을 편들어주고 싶은 이가 적지 않다. 지난 총선 결과가 증명했다. 대선까지 너무 빨리 달려가버린 한동훈의 조바심이 검찰개혁에 힘을 보태는 꼴이 됐다.
한동훈에게 우호적인 이들 사이에서도 의아함이 커진다. 그래서 이재명을 어서 빨리 잡아넣으라는 촉구인지, 이재명의 대항마로 자신을 세워달라는 호소인지 불분명하다. 당권 도전하겠다는 건가, 그럼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비전은 내놓지 않은 채 여전히 ‘동료 시민’을 호명하며 ‘이조 심판’ 깃발만 흔드는 모양새 아닌가. 본인의 거취는 밝히지 않고 존재감은 유지하려 하니 정치적, 정서적 엇박자가 난다.
그의 최근 주장을 팬 관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반이재명 정서를 자극해 지지자를 결집하면서 진로를 가늠해보려는 취지라는 것이다. 팬덤으로 경쟁하려 든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팬덤에 기댄 정치는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이재명 팬덤과 한동훈 팬덤은 질적으로 다르다. 져도 함께하겠다는 지지자들과 이길 듯하니까 지지하겠다는 이들은 힘과 세가 같을 리 없다.
페이스북을 통한 그의 ‘선택적 발언’은 어느 틈에 피로감을 준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은 외면하고 ‘마이크 파워’에 걸맞지 않은 주제에만 불쑥불쑥 관여하기 때문이다. 총선 뒤 한 달 만에 내놓은 발언은 국외 직구 규제 방침에 대한 민심에 숟가락 얹는 내용이었다. 지구당 부활 방안은 논의 숙성 과정을 생략해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정작 채 상병 특검법이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사는 물론이고, 오물 풍선과 ‘대왕고래’, 의료 공백과 고물가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는 이미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채점표가 차곡차곡 채워지는 중이다. 대세는 이어가겠으나 결과는 알 수 없다. 간 보기로는 독보적 서사를 지닌 안철수에 못 이르고, 줄타기로는 반윤인 듯 친윤 같은 비윤인 나경원의 노하우를 따르지 못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언제까지 ‘스킵’(건너뛰기) 할 수 있을까.
인간적 이유로 망설이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해 주저하는 것이라면, 그조차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기본이다. ‘이조 심판’ 깃발을 뚝심 있게 흔들겠다면 자신 역시 같은 잣대로 평가받고 심판받을 자세가 돼야 한다. 과연 한동훈에게 그럴 이유가 있을까. 그는 지지자들만큼도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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