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배우의 특별한 교감···압도적 하모니에 매료

정혜진 기자 2024. 6. 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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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으로 가기 직전까지 자신이 구상한 '동양평화론'을 남기느라 바빴던 붓자락을 내려놓은 안중근의 입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일제의 침탈을 끝내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과 사형수를 사형집행장으로 안내하는 교도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안중근을 존경하는 치바 신이치.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민우혁 배우가 분한 안중근은 깊고 위풍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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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15주년 대작 뮤지컬 '영웅']
日배우 첫 합류···'동양평화' 합창
민우혁·박정자 등 연기력에 주목
자작나무숲 등 웅장한 세트 눈길
뮤지컬 ‘영웅’ 1막에서 민우혁이 첫 넘버 ‘단지동맹’을 부르고 있다. /사진 제공=에이콤
[서울경제]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평화롭게 사는 것’

사형장으로 가기 직전까지 자신이 구상한 ‘동양평화론’을 남기느라 바빴던 붓자락을 내려놓은 안중근의 입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재판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밝히던 ‘누가 죄인인가’ 넘버와는 달라진 부드러운 톤이었다.

일본인 교도관인 치바 신이치가 “서로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평화”라며 노랫가락을 보탰다. 일제의 침탈을 끝내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과 사형수를 사형집행장으로 안내하는 교도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안중근을 존경하는 치바 신이치. 국적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한 두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화음을 이룰 때 관객들은 전율했다.

올해 15주년을 맞은 뮤지컬 ‘영웅’의 명장면은 ‘동양평화’ 넘버에서 나왔다. 처음으로 일본인 배우가 합류해 이룬 한일 배우의 화음은 압도적이었다. 윤홍선 영웅 프로듀서가 “매 시즌마다 꽂히는 넘버가 다르지만 이번 시즌은 ‘동양평화’ 넘버가 시작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뮤지컬 ‘영웅’ 1막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로 결심한 안중근을 맡은 민우혁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 /사진 제공=에이콤
뮤지컬 ‘영웅’에서 조마리아를 연기한 박정자(가운데) 배우가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사진 제공=에이콤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민우혁 배우가 분한 안중근은 깊고 위풍당당했다. 이번 시즌 두 번째로 참여하는 민우혁은 185cm가 넘는 큰 키로 강력한 존재감을 뽐냈다. 성량 또한 압도적이었다. 15년 간 매 시즌 출연해 안중근의 고유명사가 된 정성화를 잇는 대들보로 꼽힐 만했다. 민우혁을 든든하게 받쳐준 건 어머니 조마리아 역의 박정자 배우였다. 안중근이 거사와 가족의 안녕 사이에서 고민할 때 주저 없이 안중근의 등을 떠미는 것도, 사형대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힘주어 말하는 어머니 역시 박정자 배우이기에 그 의연함이 납득이 됐다. 박정자가 유일하게 아들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넘버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여순 감옥과 조선이라는 두 사람의 거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절절하게 닿았다.

자칫 심각하게 흐를 수 있는 극에 긴장을 풀어준 건 안중근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우덕순과 함경도 사투리의 조도선 콤비였다. 체구의 차이, 출신 지역 만큼이나 물과 기름 같은 캐릭터지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새로운 재미를 줬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중간에 정차하기를 기다리며 아무도 없는 간이역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떠올리게 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 제공=에이콤

배우들 만큼이나 열연한 건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트와 안무였다. 1막의 시작과 2막의 시작을 담당하는 러시아 연해주의 자작나무숲은 비장미와 희망을 오갔다. 1막의 첫 넘버인 ‘단지 동맹’에서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이 손가락을 잘라 뜻을 결의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을 때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떠올리게 하는 섬뜩한 분위기가 연출됐으나 2막에서 네 차례의 총성이 울린 채 막이 열렸을 때는 같은 장소에서 희망찬 분위기가 묻어 나왔다. 일본군과 독립운동가들의 추격씬 역시 리듬감과 의상, 보폭 차이 등을 다르게 해 긴장감과 생생함을 끌어올려 몰입이 떨어지는 씬들이 거의 없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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