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의 세계 명반산책] 영원한 청춘 산울림의 소박한 귀환

2024. 6. 14. 17:1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그룹 '산울림'이 다시 등장했다.

올해 3월 15일 유럽에서 발매한 'Evening Breeze'라는 편집 앨범에는 산울림의 기록지가 담겨 있다.

그는 산울림 앨범 중에서 23곡을 직접 선별한 음반 제작에 공을 들인다.

이 때문에 산울림의 발표곡 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8집에서야 등장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구에르센 음반사가 발매한 산울림 편집 음반 '이브닝 브리즈' 표지. 뮤직버스

그룹 '산울림'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레트로의 상징물인 음반이었다. 올해 3월 15일 유럽에서 발매한 'Evening Breeze'라는 편집 앨범에는 산울림의 기록지가 담겨 있다. 이는 안토니 고르주스라는 스페인 구에르센 음반사 대표가 기획한 결과물이다. 산울림과는 일면식도 없다는 그는 1990년대 후반 한국인의 소개로 산울림 1집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이유는 변칙적인 리듬이 이어지는 독특한 사운드 때문이었다. 고르주스는 이후 한대수, 신중현, 김정미로 이어지는 한국 음악에 몰입한다. 앨범 타이틀인 'Evening Breeze'는 동요 '저녁 바람'에서 인용했다. 그는 산울림 앨범 중에서 23곡을 직접 선별한 음반 제작에 공을 들인다. 구에르센 음반사는 후속작으로 김정미의 음반을 내놓기를 고대하고 있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3형제는 1977년 1집 앨범을 발표한다. 산울림의 탄생은 맏형 김창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10대 후반부터 작곡과 연주를 겸했던 김창완은 노랫말에 객관성을 부여한다. 이는 현실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추구하려는 관조적인 가사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음악이 반세기에 걸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백에 가까운 노래와 추상적이고 심오한 가사, 록 마니아의 심지를 자극하는 사이키델릭 사운드, 사랑 타령 일색인 가요 풍토에서 탈피한 음악이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산울림의 발표곡 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8집에서야 등장한다. 이는 감정과 가사를 가능한 한 분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1979년에는 동요집을 발표해 '개구쟁이'라는 곡이 알려진다.

하지만 4집과 5집은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다. 산울림의 존재감은 8집을 기점으로 재점화한다. 수록곡 '내게 사랑은 너무 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지만 김창완은 8집을 철저한 상업성으로 이뤄진 음반이라고 평가절하한다. 1983년에 나온 9집 앨범은 산울림의 후반기 음악사에서 주목해야 할 결과물이다. 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9집 음반은 3집까지의 정체성을 다시 끌어낸 작품이다. 김창완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는 전업 음악가의 길을 접고 직장 생활을 택한다. 이후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후속작이 나오지만 김창훈과 김창익의 흔적은 서서히 사라진다. 공연 활동을 통해 다시 뭉친 이들은 1997년 13집을 출시한다. 10년이 넘는 휴지기를 거친 산울림은 2008년부터 14집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산울림은 공식 해체를 발표한다.

필자가 애청하는 노래는 '안개 속에 핀 꽃'과 '백일홍'이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곡은 7집에 실린 '청춘'이다. 1981년에 등장한 이 곡을 라디오에서 처음 접했다. 패기만만한 청춘이 아닌 그늘진 청춘을 읊조리는 김창완의 음성에서 비관이라는 화두가 밀려왔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청춘은 순간의 꿈으로 종결되었다. 7월의 노을처럼 저물어 가는 젊음의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풀어낸 곡이 '청춘'이더라.

나는 정말 그를 만난 것일까. 이는 문화잡지 '페이퍼'의 필진이던 황경신이 김창완을 인터뷰한 이후 남긴 문장이다. 누군가를 해석하고 분해하는 습성은 필요악이다. 산울림은 이러한 관념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를 관통한다. 추상화가 잭슨 폴록은 "나는 내 감정을 그려 보이지 않았다. 단지 표현할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산울림의 음악 또한 그럴 것이다.

[이봉호 문화평론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