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⑤] 비만에 대하여

2024. 6.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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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고등학교 2학년 때 키는 175㎝, 몸무게는 60㎏이었다.

비만은 나의 적이다.

비만의 사회적 비용이나 안티 비만 산업의 성장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나와 우리의 걱정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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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뚱뚱한 겉모습 아닌
제 기능을 못하는 내면
적당히 미지근히 살며
공존하고 관리하며 살길

열일곱 고등학교 2학년 때 키는 175㎝, 몸무게는 60㎏이었다. 허리둘레는 30인치가 안 됐다. 이후 15년을 그 몸으로 살았다. 1㎝쯤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코가 높고 눈이 깊어 보였고 턱선이 날렵했다. 공군 중위 시절, 군복을 입으면 꽤 민첩하게 느껴졌다.

로맹 가리가 쓴 '레이디 L'의 한 장면. 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늙어버린 여인의 두툼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젊은 시절 조각 같던 턱과 광대뼈를 찾아낸다. 세월은 살 속에 젊음을 묻는다. 결혼 후부터 몸이 불었다. 매년 1㎏씩 몸무게가 붙었고, 0.5인치씩 허리둘레가 늘었다. 80㎏, 34인치를 넘어서면서부터 이런저런 병이 생겼다. 만성적인 고혈압과 고지혈증, 간헐적으로 발현하는 족저근막염 같은 것들이다.

식구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되었으나 결국 자신이 가장 많이 먹었던 탓에 생긴 '가정재해'였다. 회식은 빠질 수 없다는 강박이 만든 '산업재해'였다. 음주나 흡연을 위해 지나친 건강을 삼가자는 생각에 과하게 의존한 '신념재해'였다. 건강검진을 하면 적정 몸무게가 40대 초반 시절의 73㎏쯤으로 나온다. 살을 빼라, 10년 넘게 기록되는 한결같은 주문이다.

비만은 나의 적이다. 우리의 적, 현대 문명의 적이다. 비만의 사회적 비용이나 안티 비만 산업의 성장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포화보다 자신의 비만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다는 수많은 연구와 조사 결과도 거론하지 않겠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나와 우리의 걱정은 지나치다. 비만에 대한 증오나 혐오는 과도하다.

스웨덴 작가 레나 안데르손은 '덕 시티'에서 패스트푸드와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요하는 현대사회, 미추에 대한 절대적 판단을 비판한다. 대통령이 '체지방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벌어지는 극단적인 상황, 끊임없는 식욕과 싸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 비만인을 향한 증오범죄 등을 발랄한 문체로 풀어낸다. 결론에 반전은 없지만 재미있다. 책을 덮으면서 '그렇지' 하며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행복한 뚱보들의 작가'로 불리는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그 별명에도 불구하고 "뚱뚱한 사람은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뚱뚱-혹은 통통-했다고 한다. 젊은 날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렇다. 미추 혹은 비만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다.

비만은 파괴의 대상, 전쟁의 대상이 아니다. '공존'하면서 '관리'할 수 있으면 족하다. 문제는 뚱뚱한 겉이 아니라,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는 속이라는 것을 알면 된다. 속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잘'사는 것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회식만 하지 말고-, 뜨겁게 사랑하며-다 타서 재가 되어버릴 정도까지는 말고-, 다정한 사람들과 미지근한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훌륭한 아내만 있다면 가난과 헐벗음은 아무것도 아냐. 가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난뱅이야.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했다. 가난이라는 단어 자리에 비만을 넣어도 말이 된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가벼운 나날들'에서 결혼한 남자에게 여자는 의무감과 침묵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가정을, 인생을 책임지려면 입 꾹 닫고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되겠다. 만일 미혼이라면, 결혼부터 하라. 적당한 스트레스와 적절한 잔소리, 책임과 침묵의 대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적정치에 도달할 테니.

쉰 살이 넘어서부터 내 몸무게는 70㎏대 끝자락에 걸쳐 있다. (뱃살만 빼면) 그런대로 괜찮다.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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