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망치로 책 커버를 두들기자 죽은 책이 되살아났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6. 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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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부동산 값 때문에 책은 자주 버려진다.

저자는 장시간 압력을 가해 휘어진 커버를 평편하게 해주고, 흐느적거리던 책등을 망치로 두들겨 유려한 곡선을 되살려냈다.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찢어진 책을 수선하겠다는 건 그 책을 아끼기 때문인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 된다.

애써 만든 책이 안 팔리면 출판사는 보관비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트럭째로 파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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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고 망가진 '그 책'을 부활시킨 그녀는 누굴까

치솟은 부동산 값 때문에 책은 자주 버려진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이사철 견적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가 크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이사를 다녀도 버리지 못하는 책이 몇 권쯤 있기 마련이다. '낡고 망가졌어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책' 말이다. '그 책'에 담긴 사적인 기억이 아쉬워서, 우리는 '그 책'을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책은 손상된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님이 유품으로 남긴 책, 꼬맹이 때 읽은 손때 가득한 동화, 오래전 그·그녀와의 연애편지를 어찌 함부로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직업이 '지류(紙類) 책 보존가'인 저자의 에세이다. 책 수선가란 어떤 직업이고, 그녀는 어떤 책을 수선할까.

해외에서 북아트와 제지를 전공한 저자는 '책 수선'의 외길을 걸어왔다. 오래된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담당하는 일이다.

첫 번째 의뢰품은 1980년대 삼성문화사에서 출간된 국어대사전 상·하권. 의뢰인이 가져온 거대한 두 권의 사전은 보존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사실 폐품에 가까웠다.

저자는 장시간 압력을 가해 휘어진 커버를 평편하게 해주고, 흐느적거리던 책등을 망치로 두들겨 유려한 곡선을 되살려냈다. 책과 커버가 만나는 상단 부분의 헤드밴드는 새것으로 교체하고, 겉싸개의 제목 부분은 같은 색으로 채워넣은 뒤 광을 냈다.

상실됐던 빛을 되찾은 책의 반가운 귀환을 보며, 의뢰인은 말했다.

"어릴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책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도 유의미한 의뢰품이었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훼손돼 있었다. 저자는 '새 정장을 맞추듯' 책 외형을 재구성했다. 헵번의 사진만 살리고 커버를 재제작했다. 면지는 핑크색, 가름끈은 크림색. 고서는 세상에 한 권뿐인 유일판본으로 변신했다.

"수선과 복원은 다르다"고 책은 전한다. 복원은 원본 그 자체를 하나의 이데아로 삼기에 '정답'이란 게 있다. 수선은 헌 물건을 고치는 일이기에 복원보다 자유롭다. 수선은 창조적 활동이다.

"책을 수선하려 테이프를 붙이는 일은 가급적 삼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찢어진 책을 수선하겠다는 건 그 책을 아끼기 때문인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 된다. 테이프 자국이 남거나 끈적이는 접착제 때문에 차라리 안 붙이는 게 낫다.

출판계의 비밀 한 가지. 애써 만든 책이 안 팔리면 출판사는 보관비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트럭째로 파쇄한다. 독자 손에 단 한 번 쥐어진 적도 없는 책이 출생과 동시에 사형선고를 받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오래된 책을 간직하려는 독자는 항상 존재해왔다. 오늘은 낡은 책장 귀퉁이를 다시 살펴보자. 부활을 꿈꾸며 잠든 책이 당신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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