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고 감동 느끼기...곡만 좋으면 가능한가, 아닌가"... 수학자와 첼리스트의 다른 생각

손효숙 2024. 6.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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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시절 수백 곡을 외워 부를 정도로 낭만주의 시대 독일 가곡에 빠졌던 수학자는 더 이상 가곡을 듣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수학자와 연주자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음악이 비슷한 듯 보여도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연주자는 듣는 사람이 인생의 한 순간을 떠올리고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짓기를 바란다." 대화를 토대로 비교하자면, 수학자는 이론적 구조로 음악을 감상하고, 연주자는 음악 구조를 감정으로 바꾸는 데 천착하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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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첼리스트 양성원·수학자 김민형 공저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첼리스트 양성원이 2022년 서울 강남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중 '보아라, 용사가 돌아온다'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음악은 항상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

십 대 시절 수백 곡을 외워 부를 정도로 낭만주의 시대 독일 가곡에 빠졌던 수학자는 더 이상 가곡을 듣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것을 갈망하는 과거에 대한 비현실적 향수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세상엔 나쁜 음악도 있다"는 것. 이를 듣던 음악가가 반론을 편다. "음악의 파괴적인 영향은 음악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 음악은 인간을 도덕적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교수와 수학자 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석좌교수가 공저자로 쓴 책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에는 음악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과 감상하는 이의 태도, 살아갈 힘을 주는 음악과 삶을 변화시키는 음악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한 번쯤 해봤음직한 주제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록이 책을 채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시작됐다. 양 교수가 평생 가장 많이 연주한 첼로곡에서 시작된 대화는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 대한 감상에서부터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 스타일 분석, 클래식 대중화에 대한 주제로 가치를 쳤다. 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양 교수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대화 녹취를 시작했고 1,000매 이상의 기록이 쌓였다. 책은 이를 압축, 정리한 결과물이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양성원 김민형 지음·김영사 발행·254쪽·1만8,800원

흥미로운 점은 수학자와 연주자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음악이 비슷한 듯 보여도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음악은 가치 있다"는 공통된 명제 안에서도 좋은 음악의 기준을 찾고, 감상하고, 즐기는 방법은 음악과 수학의 거리만큼이나 판이하다. 예컨대 김 교수는 감정과 상관없이 음악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슬프거나 기쁘다는 특정 감정과 상관없이 곡이 구조적으로 완벽해서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사 엄격한 정밀성을 추구하는 수학자다운 대답이다. 양 교수는 여기에 감정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연주의 힘을 덧붙인다. "모든 연주자는 듣는 사람이 인생의 한 순간을 떠올리고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짓기를 바란다." 대화를 토대로 비교하자면, 수학자는 이론적 구조로 음악을 감상하고, 연주자는 음악 구조를 감정으로 바꾸는 데 천착하는 사람인 것이다.

책은 '피타고라스가 음악을 통해 수학의 보편성을 발견했다'는 전설의 실사판이다.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전문가의 음악 탐구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수학엔 음악을 구성하는 감성이, 음악엔 곡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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