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년 유목민 역사 … 그들의 거침 없었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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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모두 유목민이었다.
고대에 쓰인 성경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수렵채집인의 삶을 에덴동산의 이야기로, 신석기혁명으로 인한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갈등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기록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성벽 안에 사는 왕 길가메시가 성벽 바깥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인물 엔키두를 애도함으로써 유목민의 삶의 방식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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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에도 지대한 영향력
야만인이란 단어로 혐오·무시
그들이 남긴 유산 재평가나서
인류는 모두 유목민이었다. 정주하지 않고 방랑하는 삶을 살아온 이들의 1만2000년의 여정이 문명을 만들어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키우는 동물과 가재도구를 모조리 싣고 이동하는 가족들은 존재한다.
노마드(nomad)라는 말의 어원은 초기인도유럽어 노모스(nomos)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목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대도시가 건설된 이후 벽 없이 생활하며 경계 너머에 사는 사람을 뜻하게 됐다.
영국 '지리학' 잡지의 편집 고문이자 언론인·작가인 앤서니 새틴이 쓴 이 책은 유목민과 정착인 간의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을 역사를 통해 추적해나간다.
고전에는 유목민의 흔적이 가득하다. 고대에 쓰인 성경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수렵채집인의 삶을 에덴동산의 이야기로, 신석기혁명으로 인한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갈등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기록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성벽 안에 사는 왕 길가메시가 성벽 바깥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인물 엔키두를 애도함으로써 유목민의 삶의 방식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 책의 연표는 기원전 9500년 무렵 시작한다.
이 시기 정착민과 유목민은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목축 생활로 옮겨가며 공존·협력했다.
유목민들은 위대한 제국을 주기적으로 세웠고 흥망을 겪었다. 훈족, 아랍인, 몽골인, 중국 원나라를 만든 건 유목민들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유목민족들은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광활한 대초원 지대 양쪽 모두에서 제국을 세웠다.
유목민들이 유럽 르네상스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14세기 아랍 역사가 이븐할둔과 많은 학자들의 저술에 남아 있다. 이븐할둔은 유목민들의 아사비야(assabiyya)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대, 연대의식, 단결심, 결속 등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유목민들의 힘을 집결시키고, 유목민들이 가족과 부족을 넘어 강력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아사비야를 통해 집결한 유목민들은 스스로의 제국을 창건하고 문명을 이룩한다.
중요한 것은 아사비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유롭게 옮겨다니고, 자연의 순환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븐할둔은 유목민 국가인 아바스왕조의 흥망성쇠를 돌아보면서, 정착의 삶에 익숙해지는 때부터 아사비야가 약해지고 안락한 삶에 젖는다고 지적한다. 유목민의 특성이 제국의 성패를 모두 좌우해왔다는 말이다.
유목민의 흔적은 우리 유전자에도 새겨졌다. 정착 생활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산만함'은 교정의 대상이다. 유전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성정은 유목민 유전자 DRD4-7R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일 가능성이 있다.
다른 습성, 관습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야만인'이란 단어처럼 현대인들에게는 유목민들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감정이 뿌리 깊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방랑하는 우리의 '다른 반쪽'을 재평가한다.
그들은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가며 환경에 순응하고 유연함을 발휘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점에서, 자연과 균형을 맞춰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을 남겨줬다고 이 책은 변론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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