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관계 통장은 두둑한가요?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 교수 2024. 6. 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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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로 세상읽기]<13>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인간관계도 기계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야
마음이 부유하면 감정 계좌 잔고도 넘치는 법
[서울경제]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 인원이 150명 정도라고 했다. 이를 ‘던바의 수’라고 한다. 당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친구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안정적으로 진정한 유대관계를 맺는 사람은 고작 150명 남짓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과 집단 관리에 최적의 숫자로 과거 대부분의 인간 집단과 군대나 마을 단위가 150명 정도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 보면 침팬지 65마리, 오랑우탄 50마리, 고릴라 33마리, 긴팔원숭이 14마리 등으로 인간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사회성을 나타내는 관계 지수가 바로 지능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인간은 혼자 살기 어려운 동물이다. 그래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도 무인도에서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친구로 만들었고,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난파당한 주인공 척은 배구공 친구 윌슨이라도 필요했던 게지.

이렇게 사회집단을 이루어 부대끼며 살아온 인간에게는 다른 이와 교감, 공감, 소통, 협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꼭 필요한 절대적인 능력이었을 것이다. 소통 강의에서도 늘 강조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란 출세나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인간관계에서 온다. 그러니 이제는 인간관계도 어느 공장 안의 슬로건 마냥 기계처럼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칠할 일이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柴田トヨ)는 남편과 사별 후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자신의 장례 비용으로 모아 둔 돈으로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판했다. 간결한 시에 녹아있는 삶에 대한 관조와 유머가 호평을 받으면서 대형 출판사가 다시 책을 펴냈는데, 시집은 1만 부만 팔려도 성공으로 평가 받는 일본에서 무려 158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시바타 도요는 향년 102세로 작고했다. 그의 시 중에 ‘저금’이라는 시가 있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 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어떤 이는 뭔 짓을 해도 ‘그럴 수도 있지’싶지만 행동하는 족족 안 예쁜 사람도 있다. 모든 칭찬은 흐뭇할 듯싶지만 어쩐지 괜한 불쾌감까지 느껴지는 칭찬도 있다. 어떤 이의 충고에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임에도 거부감부터 생기는 충고도 있다. 왜 우리는 일관적이지 못한 걸까.

리더십 이론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는 사람 사이에 감정은행 계좌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감정은행 계좌가 개설되는데 관계가 계속됨에 따라 잔고가 늘기도 줄기도 한다는 것. 당연히 기쁨과 감동을 주면 잔고가 늘어나지만 노엽거나 섭섭한 일이 반복되면 계좌에서 인출이 된다. 좋은 관계는 잔고가 제법 두둑해지지만 잘못하면 인출만을 반복해 깡통 계좌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잔고가 두둑한 상태에서는 다소 실수하더라도 용서가 되지만(인출해도 지장이 없으므로) 깡통 계좌 상태에서는 사소한 일로도 상대방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는 것(바닥에선 더 이상 뺄 게 없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신뢰의 힘이렸다. 슬프다. 그래서 OO의 말은 늘 언짢고, XX의 행동은 언제나 예뻤던 거야. ‘이만하면 잘 살았지’하며 그래도 제법 두둑한 감정 통장이 수두룩하다고 위안 삼아 보지만 아뿔싸 바닥이 보이는 계좌도 영 없진 않네.

자, 그러니 오늘은 각자의 감정 통장들을 꺼내어 통장 정리를 해보시는 게 어떨까. 비록 OO은행 계좌는 마이너스일지언정 그래도 마음, 관계만은 꽤 두둑한 부자임을 확인해보시길! 하여 이 각박한 시절을 버틸 기운을 내보시길!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여겨보시길!

이쯤에서 윤동주의 시 ‘팔 복’처럼 내 맘대로 성경 구절을 바꿔볼까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없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마음이 부유하면 감정 계좌의 잔고가 넘쳐난다! 시바타 도요도, 스티븐 코비도 그걸 딱 짚은 거였군.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 교수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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