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정치화’ 유혹 버리고 북·중·러에서 중·러 떼내야 [쓴소리 곧은 소리]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안보는 국내에서 시작된다. 외침(外侵)으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민의 관심사이니 정치화의 유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스럽다. 근대 전쟁사학자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수단, 정치 그 자체"로 규정했다. 그런데 19세기 전쟁은 군대의 파괴로 끝났고, 2차대전 때는 도시를 파괴했다. 지금 한반도 핵전쟁의 끝은 계측이 안 된다. 안보를 정치화의 제물로 삼으려는 미련이 있다면, '시대착오'다.
큰 충돌 없이 북의 태도 변화 끌어내는 게 최선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은 문명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5월28일부터 6월9일까지 4차례 내려보냈다. 민간단체의 5월10일과 6월6일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았다. 합참이 식별한 것만 1620개다. 비행금지구역(P-73)의 한복판인 대통령실 인근에도 떨어졌다. 군은 6월9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해 맞대응했다. 2시간만 방송한 후 "전략적·작전적 융통성" 있게 작전할 것이라며 추가적 실시 여부를 북의 행동에 맡겼다. 그날 늦은 밤, 4차 풍선 도발로 맞선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삐라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하면 새 대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 후 소강상태다.
핵미사일을 손에 쥔 불가측의 폐쇄집단을 육, 해, 공, 사이버, 우주의 모든 도메인에서 상대하는 안보·정보 당국과 군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이번 대응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굳이 얻은 것이라면, 윤석열 정부가 선호하는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는 점이다.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체 효력을 정지(6월4일)함으로써 군의 대비태세에 제약을 없앴다. '대북 굴종 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대비 구도를 부각했다고도 자평할 수 있겠다. 북한이 비정상 국가성을 드러냄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 총비서와 김 부부장 남매는 얼마나 득을 보았을까?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2022년 12월26일 드론 영공 침공에 이어, 남한을 또 깊숙이 침범해 냈다. 벼랑 끝 전술의 기억을 살려내어 남한 내 여론 분열과 진영 대립을 불렀다. 생화학제 탑재의 공포도 심었다. 대통령실과 군의 대응상 조급성과 불안전성을 노출하게 해서 신뢰를 떨어뜨렸다. 남한의 대북 전단·확성기 방송과 오물의 등치 효과도 나름 보았다.
드러나지 않는 북의 전략 변화 조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6월4일부터 10일은 한미가 확장억제력 강화를 시현한 기간이다. 미 바이든 대통령은 6월4일자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위협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했다. 같은 날 미 반덴버그의 공군지구권타격사령부는 최강 ICBM인 미니트맨3를 시험발사했다. 5일의 한미 연합공중훈련에는 전략폭격기 B-1B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정밀유도식 합동직격탄 투하훈련을 했다. 10일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 확장억제를 결합하는 '일체형 확장억제'의 공동 지침을 검토했다. 한편, 김 총비서는 5월27일의 제2차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자인한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풍선 도발은 여론 관리의 목적이 있겠지만, 전술적인 물리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조를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남한을 "제1 적대국"으로 명시(2월8일)하고 교류와 대화의 다리를 다 불살라버린 김 총비서다. 8월 한미 연합훈련 때 첫 핵작전 연습과 11월 미 대선 국면을 쳐다보고만 있겠는가?
그래서 첫째, 안보의 정치화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요 측면에서 정책의 선입견이 군 작전에 작용하고, 공급 측면에서는 군 지휘관이 알아서 정책에 맹종할 수 있다. 정치화의 후과는 참혹하다. 정유재란 때, 선조의 출전 명령을 거부해 '조정 기망 및 임금 능멸 죄'로 압송되는 통제사 이순신을 지켜본 후임 원균은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해군은 칠천량해전에서 궤멸했다. 미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은 국방부에 별도 팀까지 만들어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WMD 구축 및 테러집단인 알카에다와의 연계' 신념을 논리화해 2003년 3월, 침공을 관철했다.
강공 일변도의 이분법적 콘셉트는 불확실과 모호의 전선에서는 화를 부른다.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그 종착이다. 처칠은 협상을 위해 무장한다고 했다. 존 F 케네디는 그런 처칠의 관점을 따라 냉전의 전사가 됐다. 안보·정보라인이 오래 북한을 상대하면서 축적한 직업적 경험과 객관적 정보를 존중할 시점이다.
둘째, 군은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전문기술가) 집단이다. 후방의 청중이 아닌, 전방의 적만 바라보게 되어있다. '억지'는 큰 것 한 방으로 통하지 않는다. 상황과 조건 적합적이어야 한다. 노력과 돈을 들이고, 오래도록, 공을 탐하지 않고, 물샐틈없이 압박해야 한다. 군의 영은 서고, 적은 공포를 느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김 총비서가 답답함을 더 토로하게 해야 한다. 큰 충돌 없이 북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게 억지의 본령이고, 해법이다.
대북 확성기의 심리전 효과 검증 필요
셋째, 대북 확성기의 심리전 효과를 검증해 보면 좋겠다. 가청거리 내 북한군과 주민에 대한 영향, 북의 대응 방송 능력 및 직화기 공격 위험 등을 측정해 봐야 한다. 북한은 유례없는 폭압 정권이다. 주민 통제 장치가 그물망처럼 있다. 외부 정보의 유입 수단은 이것 말고도 많다. 북한이 2015년 8월 대북 확성기를 조준 포격한 적이 있고 남북대화에서도 확성기 철거를 늘 요구해 왔다. 그러나 확성기의 고통을 엄살 피워 게임의 보수를 높이려는 기만술이라는 시각이 있다. 반면 남한은 '감내 못 할 조치'로 오인식해 확성기를 과대 포장할 경향도 있다.
넷째, 고전적 강압 외교와 국제 제재 레짐의 복원이다. '강 대 강'은 군사 모험가인 김 총비서가 바라는 바다. 북·중·러 구도에서 중·러를 분리해 내야 한다. 북한 도발을 국제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풀어갈 모멘텀은 조성했다. 4년 반 만의 한·일·중 정상회담을 한중 외교안보대화로 이어간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대한국 우호 발언이 나온다. 한반도의 불안정이 중·러의 이익에 반함을 설명하고 협력을 구해야 한다.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한다. 외교부는 북핵 외교를 하고, 통일부는 실효적 대북 정책을 따져보아야 한다.
한미의 압도적 대북 억지력이 오물풍선에 가려질 수 없음은 북한도 잘 안다. 당면한 위험의 크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갈 책무는 안보·정보 당국과 합참의 몫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기관의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박사이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을 거쳐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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