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년 동안 변한 게 없는 성폭력 피해자의 현실’ 밀양 사건 피해자의 외침 새겨야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용기 있게 목소리를 냈다. 유튜버의 ‘사적 제재’에 의한 ‘2차 피해’라는 원치 않는 방식으로 사건이 재조명됐지만, 이를 계기로 지난 2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성폭력 피해자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다.
피해자와 가족은 지난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을 삼가 달라”고 요구했다. 또 “경찰·검찰에게 2차 피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 바란다”며 피해자나 무고한 사람이 잘못 공개되는 “2차 피해가 절대로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때 경제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피해자가 어려움을 견뎌내고 사회적 발언을 한 것에 고마움과 연대의 뜻을 표한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중학생이던 2004년 1년 가까이 동년배 남학생 44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경찰 신고로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피해자는 44명 가해자와의 동시 대질, “밀양 물 다 흐렸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경찰 발언, 가해자 부모의 협박 등 수사 과정의 2차 피해, 검찰의 가해자를 배려한 기소 최소화, 법원의 ‘형사처벌 0명’ 솜방망이 판결, 언론의 피해자 신상털기 보도로 모든 단계에서 고통 받았다. 사법 정의 실현에는 실패했지만, 성폭력상담소 등의 개입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배려하는 수사 절차 마련, 성폭력전담 재판부 설치, 친고죄 폐지 등 일부 제도 개선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 유튜버의 가해자 신상 공개 과정에서 피해자에 가해진 2차 피해를 보면 이 사회가 과연 얼마나 나아졌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 응징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동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해당 유튜버는 피해자 동의를 얻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 ‘게시물을 내려달라’는 피해자 목소리를 무단으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는 게시물의 악성 댓글에 또다시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한국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 책임을 축소하는 이른바 ‘강간통념’, ‘성폭력 편견’(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피해자 인권이 무시된 가해자 검거, 수사, 처벌 수사관행 역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해자 응징·처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다.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피해자의 호소를 온 사회가 받아안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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