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은 나와의 약속"…빈혈에도 피 나누는 사람들
저출생 고령화로 혈액 부족 가속화
"헌혈 존중 분위기·실질 혜택 필요"
[서울=뉴시스]우지은 기자 = 헌혈자 수가 줄어도, 빈혈 증상이 있어도, 매년 얼굴 모르는 환자들에게 피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
헌혈의집에서 만난 박영옥(43)씨는 올해로 14번째 헌혈을 마쳤다. 박씨는 "헌혈하면 몸이 안 좋아지지 않냐, 왜 꾸준하게 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받기도 한다"며 "헌혈은 나와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14일 세계 헌혈자의 날을 맞아 뉴시스는 서울 광진구의 헌혈의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헌혈하러 온 사람들을 만났다. 헌혈자들은 최근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9시께 문을 연 헌혈의집 건대역센터에는 7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이동현(22)씨는 "오늘 아침은 사람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헌혈 대기자들은 회사에서 세계 헌혈자의 날에 헌혈하라고 독려하는 공지가 내려와 헌혈 공가를 내고 온 같은 회사 동료 사이였다.
직장인 박윤희(34)씨는 이날의 첫 헌혈자였다. 박씨는 빈혈이 있었다. 헌혈 전 검사에서 철분 수치가 미달이어서 헌혈 부적격 판정을 받기 일쑤였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철분제를 먹고 수치가 정상화돼 오늘로 두 번째 헌혈에 성공했다"며 "요즘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영화표나 회사의 공가 처리 등 혜택을 줘야 헌혈을 많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의 동료 김태연(32)씨는 헌혈을 마친 뒤 "헌혈 못 할 이유가 너무 많다. 혈압, 당뇨 등 질병을 앓거나 미용을 위해 약을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타인에게 도움이 필요하니 헌혈해야 한다는 광고,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순봉(54)씨도 회사 독려로 매년 헌혈한다. 헌혈 10회차인 장씨는 "헌혈 가능한 나이를 정하는 것보다 건강 검사를 한 뒤 몸 상태가 가능하면 헌혈하도록 해야 한다"며 "요즘은 고령이어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헌혈자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저출생 고령화로 실제 헌혈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든 탓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정보통계에 따르면 헌혈가능인구는 5년째 감소하고 있다. 2018년 3946만309명이었던 헌혈가능인구는 해마다 줄다가 2020년 3938만3004명, 2023년엔 3887만3293명으로 약 60만명 줄었다.
헌혈가능인구는 만 16~69세다. 전혈채혈, 성분채혈 등 채혈 종류와 양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혈액관리법 시행규칙은 16세 미만이거나 70세 이상인 사람의 채혈을 금지한다.
이마저도 2009년 64세에서 5년 연장돼 69세까지 헌혈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혈액 수요를 맞추기엔 역부족이다. 인구성장률이 낮아지고 인구 구성비도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05년 인구성장률은 0.21에서 2021년 -0.13을 기록한 뒤 2023년 0.08로 소폭 반등했다.
2005년 전체 인구 구성비에서 19.1%를 차지했던 0~14세는 2023년 11%로 줄었다. 앞으로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 인구가 줄고 있다는 뜻이다. 2026년엔 9.7%로 10%대 선이 무너질 것으로 추계했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 구성비는 늘었다. 2005년 9%에서 2008년 10.2%를 기록했고 2023년 18.2%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0~14세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의 구성비가 약 20년 전과 반대가 됐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저출생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로 헌혈이 가능한 인구는 점차 감소하는 반면에 수혈이 필요한 인구는 점차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헌혈을 독려하는 대책으로는 헌혈자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과 실질적 혜택을 꼽았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혈액은 오직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며 "실질적인 헌혈 증진을 위해서는 헌혈자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헌혈공가제도,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 헌혈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준다면 헌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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