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도 못했는데 실패하면 어때” 운동천재들의 ‘멀티’ 도전기 [올어바웃스포츠]
ESPN에 따르면 스티븐슨은 최근 빌스에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미식축구화를 신었을 정도로 새로 도전한 종목에 문외한입니다. 그럼에도 팀이 스티븐슨에게 비치는 기대감은 적지 않습니다. 레슬링 챔피언인 스티븐슨의 근력과 순발력, 스피드는 초록색 필드 위에서도 여전할 것이란 믿음이지요.
NFL은 이렇게 타 종목에서 잔뼈가 굵은 운동선수들을 데리고 오는데 적극적입니다. 슈퍼볼 3연패를 노리고 있는 캔자스시티 치프스도 지난 3월 럭비 스타인 루이스 리즈-자밋과 3년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NFL 팀들의 자신감은 여러 종목을 동시에 섭렵한 운동천재들이 스포츠 역사속에서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종목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재능의 각축장에서 족적을 남겼던 멀티 스포츠 선수들은 누가 있었을까요. 또 한국에선 이런 선수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잭슨은 떡잎부터 달랐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는 물론 육상 10종경기에서도 두 번이나 챔피언에 오를정도로 만능 스포츠선수였습니다. 심지어 두차례 10종경기에선 2위와 점수를 너무 많이 벌려서 마지막 1500m 경기는 뛸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MLB 뉴욕 양키스의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잭슨은 프로 제안을 거절하고 오번대학교에 진학합니다. 대학시절 미식축구팀에선 한 플레이당 6.6야드를 달리며 해당 지역 기록을 세웠고, 그의 등번호는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받았습니다. 대학야구에서는 외적인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NFL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미국대학운동선수협회의 규정을 악용해 잭슨이 야구를 그만두고 미식축구를 선택하도록 술수를 부렸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야구선수로서의 평가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5년 한 MLB 스카우트는 보고서에서 잭슨에 대해 “유일한 약점은 야구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부상만 없다면 역대 최고 선수중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기 까지 했습니다.
대학 졸업시즌인 1986년. 잭슨은 MLB 캔자스시티 로열스로부터 4라운드에 지명됐고, NFL에선 탬파배이 버커니어스로부터 전체 1순위로 뽑힙니다. 잭슨은 자신의 야구 경력을 망친 버커니어스를 외면하고 야구를 선택합니다.
잭슨은 MLB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데뷔 이듬해 22홈런을 때리며 예열을 마친 후 프로 4년차인 1989년엔 올스타 선발로 뽑히고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1994년 은퇴한 잭슨은 부상 등을 이유로 많은 경기에 뛰질 못하지만 1989년 홈런과 타점에서 아메리칸 리그 4위에 오를만큼 나름의 족적을 남깁니다.
NFL 러닝백으로서의 잭슨도 만만치 않습니다. 1987년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와 비쿼터백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으며 계약을 체결했고, NFL과 MLB를 동시에 뛰었습니다. 1991년 고관절 부상으로 4년간의 짧은 커리어에 그쳤지만, 그간 잭슨은 한 경기 221야드를 질주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현역 주전 쿼터백이자 쿼터 코리안인 카일러 머리 선수는 NFL과 MLB 양 리그 래프트에서 모두 1라운드에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는 미식축구에 집중하겠다며 MLB 커리어를 이어가지 않습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야구로의 ‘외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93년까지 3연속 NBA 파이널 우승 후 2년간 MLB의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였던 조던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2년간 화이트삭스의 마이너리그팀에 있었던 그는 127경기 동안 타율 0.202, 출루율 0.289, 장타율 0.266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다시 NBA 무대를 평정하러 돌아옵니다.
이밖에 WBA, WBC 등 주요 복싱기구 미들급 챔피언이자 럭비선수였던 호주의 앤서니 먼딘,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이면서 2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밥 헤이즈 등도 대표적인 ‘멀티 스포츠맨’들입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문자그대로 ‘종목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선수들이 나옵니다. 미국의 짐소프는 1912년 올림픽 5종 경기와 10종경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데다 NFL과 MLB에서 각각 13년, 7년간 뛰었습니다. 2년간 프로농구에 몸담은 것은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유망주 시절의 멀티 스포츠 경험은 단일 스포츠에 매진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이콥 칼세이 박사는 “다양한 스포츠 경험은 더 훌륭하고 다재다능한 운동선수를 만들고 주된 종목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이유로는 특정 근육 등에 대한 회복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스포츠의학 정영외과 저널에 게재된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만 7세에서 18세 사이의 운동선수는 단일 스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경우 부상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도한 훈련으로 뼈, 근육, 힘줄 및 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여러 스포츠를 함으로써 부위별 적절한 휴식과 회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지요.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은 유아기 한 스포츠에 집중하는 것과 장기적인 스포츠 참여 혹은 운동선수로서의 대학진학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한국 스포츠에 투입되는 재정의 상당수가 엘리트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으로 흘러들어가며 체육계가 부진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합니다. 이때문에 다시 엘리트체육 지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세계 스포츠 최강국 미국을 살펴보면 보다 넓은 생활체육,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는 것이 우선이지 싶습니다. 보 잭슨, 디온 샌더스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 규격외 스포츠 선수들은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무리없이 즐길 수 있었던 환경이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죠. 한국판 보 잭슨을 기다리면서 누구나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앞당겨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리튬 대박 터지나”…한국, 2만5천톤 묻혀있는 ‘이곳’ 단독탐사 - 매일경제
- 윤 대통령, 임신 중인 기자에게 “건강관리 잘하길”...전용기서 기자단 격려 - 매일경제
- 십자가에 손발 묶여 총살되는 순간 생생…독립운동가 희귀사진 첫 공개 - 매일경제
-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임현택 의협회장 공개 저격한 전공의 대표 - 매일경제
- 채상병 묘역 앞에서 흐느낀 전 대대장…“사령부가 차별·학대” - 매일경제
- 수원지검 “‘이화영 1심’ 비판한 민주당 주장은 사실관계 왜곡” - 매일경제
- “이렇게 편한 차림으로 만나다니”...이재용, 저커버그 자택서 단독 미팅 - 매일경제
- “女직원 강제 추행”...‘서편제 주연’ 김명곤 전 장관 1심 징역형 집행유예 - 매일경제
- “돈 없다더니 이 큰 돈이 있다고?”…미국에 벌금 6조원 내겠다는 권도형 - 매일경제
- “모두 자백한다” 오재원, 폭행·협박 제외 혐의 인정…‘대리 처방 연루’ 야구 후배들도 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