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대오 무너지나…필수의료 휴진 불참에 흔들리는 개원의들
개원의 “휴진하려니 불안, 안 하려니 죄책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8일로 예고한 전면 휴진을 앞두고 의료계의 균열이 감지된다. 분만과 아동, 응급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이날 휴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집단 휴진에 대한 행정처분을 예고하면서, 동네 병⋅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의 휴진 신고도 저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동네 병⋅의원을 상대로 요청한 휴진 신고를 이날까지 받는다. 휴진 신고 명령은 의협이 집단 휴진을 예고한 오는 18일 진료를 유지해야 하며, 부득이 휴진해야 할 경우 휴업신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 10일부터 전국 3만6000여 병원에 신고 명령을 내리고 전날(13일) 접수하기로 했는데, 기한을 하루 연장한 것이다.
일부는 정부가 휴진신고 접수 기한을 연장한 것을 두고 휴진 신고 병원이 정부 예상을 밑도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의협은 집단 휴진 의사를 밝혔지만, 개원의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지 않고 있다. 박용언 의협 부회장은 페이스북에 “의협은 회원의 참여를 기대할 뿐 일체의 강요나 지시는 하지 않는다. 믿을 뿐이다”고 썼다.
이 같은 의협의 태도에 강성파인 개원의 사이에 불만이 나왔다. 한 개원의는 “의협의 요구를 들어보면 휴진에 참여하는 회원은 불안하고, 참여하지 않는 회원은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의협이 ‘휴진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선을 긋는 것이 무책임해 보인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 의사회는 휴진 신고 없이 그날 진료를 일찍 마친 후 오후 집회에 참여하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이 개원의 휴진 참여를 독려하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집단휴진율이 30%를 넘으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의협 지도부에 공정거래법 위반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대법원은 의협이 회원에게 집단 휴업·휴진 추진을 ‘강요’ 했다고 보고 공정거래법 위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의협은 의사대회 당일 휴업·휴진할 것을 권하면서 참석 서명과 함께 불참자에게 사유서를 요청했다. 이 판결로 의협 회장은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해서인지, 의협에서 ‘단일대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임현택 회장은 지난 11일 대회원 서신을 통해 “단일대오만이 의료정상화를 위한 유일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공의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의료계 단일창구를 주장하는 의협의 행보를 공개 비판하고 의협이 주축인 범의료계 대책위원회에도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대학병원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분만과 마취, 뇌전증, 응급 환자 등을 담당하는 필수의료분야 의사들은 진료실을 지키기로 했다. 앞서 140여 병의원이 속한 분만병의원협회는 의협 휴진에 불참하기로 했고, 응급실과 마취과 의사들은 기존대로 교대 진료를 하면서 의협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아동병원 단체도 의협의 집단 행동에 불참하기로 했고, 뇌전증 환자를 보는 교수들도 불참 입장을 전했다. 이날 대학병원들의 뇌전증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거점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는 “먼저 아픈 환자들을 살리고 전 세계 정보 수집, 전문가 토론회 및 과학적 분석을 통해 2026년 의대정원을 재조정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전 국민의 공분을 피할 수 없고, 나아가 전 세계 의료인과 주민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협의체는 “잘못이 없는 중증 환자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지 말고, 차라리 삭발하고 단식하면서 과거 민주화 투쟁과 같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정부에 대항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노조도 입장문을 내고 휴진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입장문을 내고 “우리는 의사 집단휴진에 따른 진료·수술 연기나 예약 취소 업무를 거부한다”며 “병원노동자들은 의사들의 욕받이가 아니다”고 밝혔다. 두 병원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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