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뇌전증 일으키는 유전자 단서 발견··· 맞춤 치료 가능해지나

김태훈 기자 2024. 6. 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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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환자가 발작 증상을 보이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제공

한국인에게 뇌전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확인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들 유전자 때문에 뇌전증이 발생한 환자들을 위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김세희 교수, 진단검사의학과 최종락·이승태 교수 연구팀은 뇌전증의 각 유형마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변이를 발견해 이를 국제학술지 ‘에필렙시아(Epilepsia·간질)’에 게재했다고 14일 밝혔다.

과거 간질이라고 불렀던 뇌전증은 전 세계 인구 중 약 1%에게 발생하는데,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장애를 초래하는 발작 증상이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신경질환이다.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달되는 전기 신호가 여러 가지 원인으로 균형이 깨지면서 과도한 흥분을 일으키면 흥분된 부위에 따라 의식의 변화, 경련 등 다양한 발작 증상이 일어나는 뇌전증이 나타난다.

원인으로는 중추신경계의 감염이나 뇌 이상 발달, 뇌종양 등이 지목되고 있는데, 최근 다양한 연구에서 특정 유전자들의 변이도 중추신경계의 발달·기능에 영향을 미쳐 소아 뇌전증을 일으킨다고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 대부분이 서양인의 유전자에 치중된 탓에 한국인에게 뇌전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정보는 부족했다.

연구진은 뇌전증 증상을 보이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인 뇌전증 환자 957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실시했다. 분석 결과, 뇌전증 관련 유전자의 이상이 나타난 수검자는 전체의 32%인 310명이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드라벳 증후군 환자는 SCN1A 유전자에서 이상을 보였다. 사지를 일시에 굽히거나 뻗는 동작을 반복하는 영아연축 환자는 STXBP1, SCN2A, CDKL5 유전자에서 이상이 나타났다. 그밖에 영유아 뇌전증을 유발하는 KCNQ2 유전자와 CHD2, SLC2A1, PCDH19, MECP2, SCN8A, PRRT2 유전자 등에서도 이상이 확인됐다.

유전자 이상이 나타난 뇌전증 환자 310명 중 145명(47%)은 SCN1A, STXBP1 등 흔히 발견된 11가지 유전자 중 하나 이상의 유전자에서 이상 변이를 보였다. 또한 전체 환자 957명 중 47명(5%)만 여러 번 반복되는 공통 변이를 보였고, 대부분 환자는 희귀 변이를 보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나이에 따라 다른 뇌전증 진단율도 확인했다. 뇌전증의 원인은 연령에 따라 달라서 소아기에 발병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분만 중 뇌 손상, 급성 열성경련, 발달 및 유전질환 등이 꼽힌다. 이번에 밝혀낸 뇌전증 진단율은 신생아가 43%로 가장 높았고, 2~5세는 20%로 가장 낮았다.

연구진은 유전자 원인이 확인된 환자 310명 중 111명(36%)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환자들에게는 과거 뇌전증 치료자료를 바탕으로 효과적이었던 약물이나 식이요법 시도가 가능했다. 김세희 교수는 “이번 유전자 분석을 통해 뇌전증을 효과적으로 진단·치료하는 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한국인에 특화된 유전 변이 데이터를 구축하면 뇌전증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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