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눈빛으로 통한다” 청각 장애 미 여자축구대표팀이 소통하는 법 [플랫]

플랫팀 기자 2024. 6. 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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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각장애 여자축구대표 선수들이 지난 1일 호주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ESPN 홈페이지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모두 조용해진다. 경기 전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눈빛, 그리고 수화다. 눈으로, 손으로 의견을 나눈 뒤 경기가 시작되면 그들은 앞에 있는 동료를 따라 함께 움직이고 같은 방향으로 열심히 뛴다. ESPN은 14일 ‘미국 청각장애 여자축구대표팀 눈으로 본 축구, 그리고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대표팀 근황을 소개했다.

대표팀은 지난 1일 미국 콜로라도주 코머스시티에서 호주와 평가전을 치렀다. 주전 공격수 에밀리 스프리맨(35)이 6골을 넣었고 팀은 11-0으로 대승했다. 이 경기는 사상 처음으로 TV 생중계된 청각장애 축구 경기였고 사상 처음으로 타이틀 스폰서(폭스바겐)도 등장했다. 아미 그리핀 감독은 “오늘 우리는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만들었고 내일도 그럴 것”이라고 선수단을 격려했다.

청각장애 축구는 55데시벨(dB) 이상 청력 상실이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는 30~60dB, 청소기 소리가 70dB 정도다. 경기 중에는 보청기 등 청각 기능 보완 장치를 절대 착용할 수 없다. 결국, 경기 중 소통 방식은 소리 지르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큰 동작이다. 의사소통은 대체로 후방에 있는 골키퍼와 수비수가 앞쪽에서 뛰는 미드필더와 공격수 쪽으로 이뤄진다.

미국 청각장애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5월31일 다음날 열릴 호주전에 앞서 라커에서 수화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ESPN 홈페이지

수비수 시드니 앤드류스(31)는 코클리어 임플란트(신체 내부에 삽입된 청각 기능 개선 장치)를 착용하고 있다. 앤드류스는 “한 선수가 움직이면 모든 선수들도 그를 따라 이동해야한다”며 “하프타임이 사실상 서로를 살펴볼 수 있는 너무 중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해준다. 뭔가 적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축구팀에서 나는 안전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스프리먼은 “대표팀에서는 모든 구성원은 개인이 자기 자신이 되는 동시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장애에 대한 질문은 이제 좀 지겹다”

청각 장애 여자축구대표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재정이 부족해 무료 경기장만 써야 했고 경기 당일 이동이 다반사였다. 생업이 있어 경기 날, 훈련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먼저 해야 했다. 2022년까지 청각 장애 여자 대표팀은 비영리 단체 미국청각장애축구협회 소속이었다. 선수들이 각자 돈을 내 장비를 샀고 유니폼이라고는 검은색, 흰색 반바지가 전부였다.

메간 메이왈드 골키퍼 코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금을 모금해야 했다”며 “우리 자신이 받을 메달값을 우리가 지불한 꼴”이라고 말했다. 조이 포세트 수석코치는 “우리는 낡은 유니폼을 입고 훈련과 경기를 치렀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대부분 조용하게 지냈다”고 회고했다.

미국 청각 장애 여자축구대표 선수가 청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ESPN 홈페이지

많은 선수들이 출생부터 청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가족도 모르는 경우가 적잖다. 메이왈드 코치는 생후 18개월 때 장애를 알았다. 앤드류스는 두 살이 지난 뒤에야 보청기를 착용했다. 물론 청각장애 축구팀이 있는지도 몰랐다. 생업을 하면서 축구를 할 뿐, 국가대표가 됐지만 평소 소속팀도 없다.

대표팀은 2년전 미국축구협회 산하로 들어가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SPN은 “지금 미국 청각장애 여자축구대표팀은 협회 지원 속에 성인 여자 국가대표팀 캠프에서 훈련한다”며 “다양한 색깔의 훈련복과 다양한 장비, 잘 구비된 이동수단과 수준급 식사, 좋은 훈련장, 좋은 숙소 등이 제공된다”고 전했다.

미국 청각장애 여자축구대표팀은 세계청각축구선수권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청각장애올림픽인 데프림픽에서 네 번 정상에 올랐다. 청각장애 선수들은 패럴림픽에 스스로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청각장애 선수를 위한 올림픽인 데플림픽에 나선다.

▼ 김세훈 기자 shkim@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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