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맞나… “반년간 산양 1022마리 숨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천연기념물 산양 1022마리가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에 서식하는 산양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겨울 산양 폐사의 주 원인으로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가 지목된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으로, 국가유산청과 환경부의 보호·관리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천연기념물 산양 멸실신고 내역’을 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폐사한 산양의 수는 총 1022마리로 집계됐다. 환경부가 국내 서식 산양을 약 1600여마리로 추정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산양의 절반 이상이 숨진 셈이다.
지역별로 가장 많은 폐사체가 확인된 곳은 강원도 양구군으로, 316마리가 발견됐다. 이어 화천군 264마리, 인제군 164마리, 고성군 102마리로 각각 확인됐다. 양구·화천·인제·고성은 비무장지대(DMZ) 일원이다. 이 의원은 “이들 지역은 이번 산양 대규모 폐사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가 집중 설치된 곳”이라며 “지난 겨울 폭설로 산양의 먹이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ASF 차단 울타리로 산양 이동에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외에 설악산국립공원 일원(인제·고성·속초)에서는 6개월간 346마리, 울진·삼척 일원에선 68마리가 폐사했다.
연도별로 보면 산양 피해를 보면 △2019년 6마리 △2020년 97마리 △2021년 46마리 △2022년 50마리 △2023년 95마리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으나 올해 5월말 996마리로 급증했다. 이 의원은 “ASF 차단 울타리가 본격적으로 설치된 2019년 이후부터 산양의 폐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며 “국내 산양 서식 개체 추정치 1600여마리를 기준으로 보면, AFS 차단 울타리 설치 후 산양 80.6%가 폐사한 것으로 말 그대로 멸종에 가까운 상태에 이른 셈”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천연기념물 관리·보호 주체인 국가유산청이 산양 집단 폐사 관련해 환경부와 주고받은 협조 공문은 단 1건에 그쳤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3월 29일 환경부에 보낸 ‘천연기념물 산양 폐사 관련 협조 요청’을 보면 “우리 청에서는 평소보다 산양 먹이를 2배 이상 제공하는 등 구호조치를 위하고 있으나 3월까지 폐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환경부가 설치한 ASF 울타리가 산양 폐사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언론보도도 잇따르고 있다”고 적었다.
국가유산청은 이어 “산양의 폐사가 ASF 울타리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는 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모니터링 등 환경부 차원의 관련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며 “기 시행 중인 조치가 있으면 관련 내용을 우리 청에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환경부가 지난 4월12일 주최한 ‘산양 보전 전문가 자문회의’에도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4월)회의엔 국가유산청 소관 한국산양보호협회 관계자가 참석했고, 회의 결과를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은 “천연기념물 보호·관리 주무부처인 국가유산청이 마땅히 해야 할 고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유산청이 자체적으로 원인 규명에 나서거나 관계부처들과 대책회의 한 번 하지 않고, 먹이주기 행사나 진행하면서 타 부처에 대책 마련 요구나 하고 있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전수조사를 통한 원인 규명과 그에 맞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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