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귀와 마음을 연 한국오페라…'처용' 유럽공연 성료
(빈=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9일(이하 현지시간) 파리 오페라코미크, 11일 베를린 필하모니, 13일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 홀의 숨 가쁜 대장정이 관객의 뜨거운 환호 및 기립박수와 함께 막을 내렸다. 파리올림픽 문화행사로 국립오페라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단원들과 출연진, 제작진 등 150여 명이 함께 현지로 이동한 이영조의 오페라 '처용' 유럽 투어 공연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빈 황금 홀은 빈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전용 공연장으로, 매년 전 세계에 중계되는 빈 신년음악회의 화려한 무대이기도 하다. 이날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외국인 관객들은 동서양이 절묘하게 조합된 이 독특한 음악에 90분 내내 매료된 채 미동도 없이 몰입했다.
빈 공연의 성공에는 앞서 파리와 베를린 공연에 대한 현지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호평도 영향을 미쳤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콘서트 형식의 '처용' 공연 리뷰를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에 기고한 폴커 타르노프는 '한국 국립오페라단이 옥황상제를 소개하다'라는 제하의 리뷰에서 작곡가 윤이상과 진은숙을 언급하며,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한국 클래식 음악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장소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영조의 '처용'이 다양한 현대음악의 어법을 사용하면서도 일반적인 현대 서구 작곡가들과는 달리 선율미와 극적 효과를 최대한 살려 청중 친화적인 음악이 되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 밖에도 프랑스와 독일의 평론가들은 작곡가의 심오한 음악세계를 분석하는 동시에, 처용 역의 테너 김성현, 가실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 역신 역의 바리톤 공병우, 옥황상제 역의 베이스 권영명을 일일이 언급하며 이들의 가창과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공연장마다 음향설계가 달라 연주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빈야드(포도밭) 구조의 베를린 필하모니는 적정한 잔향으로 감동의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공명이 강한 빈 필 공연장은 연주자들에게 다소 수월한 조건을 조성하며 명쾌한 음악을 선사했다.
3개 도시 어느 곳에서나 객석의 열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오페라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인 이영조의 '처용'은 이번 투어를 위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규모도 대폭 줄였고 공연 시간도 줄여야 했다. 그러나 장면들이 압축되면서 음악의 밀도 역시 더욱 높아졌다. 희극성을 지닌 원래의 처용설화를 현대적인 비극으로 해석한 김의경의 대본은 우리 시대의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적 쾌락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교훈적 의도를 지녔고 이에 대한 관객의 호응도 컸다.
지휘자 홍석원은 세 차례 공연 내내 정밀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마치 생물처럼 음악을 움직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양악기로 서양 리듬과 국악 장단을 구현하며 한국적인 신명과 비장미를 서양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했다. 국립합창단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관객을 여백의 환상으로 이끄는 합창을 통해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공연장에 따라 달라지는 무대 상황에 연출가 이지나는 빠르게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파리 오페라코미크에서는 륄리의 '아르미드'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세워둔 나무를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거뒀고,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자리한 무대의 앞뒤 공간을 적절히 이용해 동선의 최대치를 만들어냈다.
국립오페라단 최상호 단장이 파리 리셉션 연설에서 언급했듯, 이번 '처용' 공연은 클래식 K컬처의 새로운 물꼬를 텄다. 베를린의 관객들은 공연 후에 처용설화의 근원, 1987년 초연본과 2013년 개정본의 차이 등 그 예술적 발전과정에 대해 필자에게 질문을 계속 이어가는 학구적인 관심을 보였고, 빈에서는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젊은 여성 관객들이 티켓을 구매해 이 작품의 여성 캐릭터와 남성 중심 서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작곡가 이영조는 빈 공연이 끝난 뒤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유럽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크게 발전한 우리나라 음악계가 그들의 우수한 작곡기법과 연주 형식이라는 그릇 안에 우리의 정신세계를 담아온 결과, 이제 그들과 우리가 진정으로 깊이 교감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처용'이 어떤 역할을 해낸 데 대해 무척 기쁘고, 모든 연주자와 스태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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