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색을 닮았구나…물회에 빠진 넌, 작아도 돔이다

허호준 기자 2024. 6. 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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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보목포구 돌하르방식당 자리물회
자리물회 1인분 식단. 허호준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저우다. 보목리 자리먹으래 가십주. 제가 모시쿠다.”(접니다. 보목리 자리먹으러 가시죠. 제가 모실게요.)

“음…헐 일은 이신디 허 기자가 전화오난 드라이브겸 허게 갔다오주. 경안해도 요즘 철도 그렇고 자리물회가 생각나기는 해서. 하하.”(할 일은 있지만 허 기자가 전화하니 드라이브겸해서 갔다오지. 그렇지않아도 요즘 철도 그렇고 자리물회가 생각나기는 했어)

그렇게 오랜만에 김 시인과 연락이 됐다. 8일 한라산엔 꾸물꾸물 비가 내렸고, 젖은 516도로 양옆으로는 절정으로 향해가는 싱그러운 초록의 세상이 펼쳐졌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 보목동까지 가는 차 안에서 한시간 남짓 정담이 이어졌다. 1980년대 초 서귀읍이 서귀포시로 승격되면서 보목리는 보목동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보목리’가 익숙하다.

“무사 보목리까지?”(왜 보목리까지) “맛집을 소개해야 하는데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도 이십주만 여름철에는 자리 아니우꽈?” “맞아. 경헌디 무사 나영?”(그런데 왜 나랑?) “우리 시인님 말씀이 워낙 유려하지 안 헙니까.” “푸하하.”

자리물회. 허호준 기자

시인은 “생각하는 식당이 있지만 그래도 지인에게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멘? 난디 보목리 자리물회 맛집 소개해줘.” 전화 목소리에서 몇 군데 식당 이름이 나왔다. 시인이 “관광객 아닌 제주도 사람에게 추천하라면?”이라 다시 물었다. 그쪽에서는 ‘돌하르방식당’이라고 했다. 시인은 자기도 그곳에 가려고 했다며 끊었다. 기자도 며칠 전 돌하르방식당을 추천받았으니 그 식당의 자리물회 맛이 궁금했다.

통상 자리라고 불리는 자리돔은 돔의 일종이다. 보통 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다. 자리는 4월에서 7월까지가 제철이다. 이 시기를 제주에서는 ‘보리 익는 철’이라고 해서 이때 잡히는 자리를 ‘보릿자리’라고도 한다. 자리하면 보목과 모슬포가 대표 산지다. 물회나 구이, 강회, 젓 등 쓰임새가 다양한데 소형(8㎝ 미만), 중형(8∼14㎝ 미만), 대형(14㎝ 이상)으로 분류한다.

13일 오전 보목포구로 들어온 갓 잡힌 자리. 허호준 기자

보목리 인근에서 잡히는 자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뼈가 부드러운 반면 물살이 센 모슬포 일대 바다에서 잡히는 자리는 크고 뼈가 세다. 보목 자리가 물회로, 모슬포 자리가 구이로 유명한 이유다.

보목포구에 도착하자 안개에 살짝 가려진 섶섬이 눈앞에 다가왔다. 포구에는 출어를 기다리는 듯 배들이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제주올레가 지나가는 포구다. 포구 한쪽에는 자리의 본향답게 이 마을 출신 고 한기팔 시인의 ‘자리물회’ 시비가 서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시인의 언어로 자리 특성을 고라봅서.”

“음….” 잠시 뜸을 들이던 시인이 말한다. “자리는 여름날의 어촌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거야. 바구니에 담긴 자리가 한꺼번에 팔딱팔딱하면서 배에서 쏟아질 때의 자리 색깔을 떠올려봐. 그건 제주땅의 색깔이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검붉은 빛깔이 감도는 자리야말로 제주땅의 색깔이지.”

무릎을 쳤다. 아, 자리를 보고 제주땅의 색깔을 떠올리다니! 시인의 관찰력은 역시 달랐다. 그래 맞아. 제주의 색깔을 닮았구나. 해방 전 제주도의 인문과 자연을 연구한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은 ‘제주도수필’(1949)에서 “자리가 제주도 특산의 어류이고, 그 어선(테우)조차 특이한 것이니 제주도의 특이성으로는 100%의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제주도의 생명조사서’(1949)에서는 제주도에 81살 이상의 고령자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를 ‘자리’와 ‘미역’이 많다는 것을 들었다. 그의 주장에 과학적 신빙성이 있는지 차치하고서라도 그만큼 제주사람들이 자리를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 때 나온 <제주도세요람>(1937)에는 제주도내 전 해안에 자리 그물망이 650망에 이를 정도로 자리잡이가 제주 전역에서 성업했다.

자리구이. 허호준 기자

포구 바로 앞 돌하르방식당에서 자리물회 1인분(1만3천원)과 자리구이(3만원)를 주문했다. 점심을 먹던 돌하르방식당 대표 한동실(65)씨가 우리 자리에 합류했다. 17년째 이 식당을 운영하는 한씨는 “보목리하면 자리 아니우꽈? 다른 거는 몰라도 보목리에서는 자리물회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까 시작하게 돼수다”라며 웃었다.

한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실패를 많이 했어요. 자리물회 장사는 ‘단골’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자리물회를 먹으러 간다면 ‘아무개 식당으로 가자’는 말을 먼저 해요. 그만큼 단골 확보가 중요한 셈이지요.” 처음에는 다른 식당의 주방장을 모셔 문을 열었으나 자신이 어릴 때 먹던 자리물회 맛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 자리물회는 육지분들이 좋아하는 물회의 맛이지 제주도 분들이 좋아하는 물회 맛은 아니었어요. 제주도 하면 된장 아닙니까? 제가 아내한테 ‘당신이 만들면 어떨까. 된장으로 승부를 걸자’ 그래서 된장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단골장사여서 처음에는 진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 시간이 7년 남짓 걸렸습니다.” 돌하르방식당을 찾는 손님의 80% 이상이 제주사람들이라고 했다.

보목포구에 있는 돌하르방식당. 허호준 기자

주문한 지 15분 정도 지나 자리물회가 큰 대접에 먼저 나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데 음식의 향까지 더해져 후각을 자극했다. 1인분이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먹을만했다. 이 식당에서는 물회에 자리와 오이, 무, 양파, 된장 등 5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테이블마다 사과식초와 빙초산이 놓여있다. 식초는 시큼한 맛과 자리의 뼈를 부드럽게 하는데 취향대로 선택한다.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주로 사과식초를, 지역주민들은 빙초산을 이용한다.

기자는 빙초산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같이 나온 제피(초피나무 잎)를 집어넣었다. 자리물회를 각자의 그릇에 떠서 넣고 입에 넣었다. 먼저 진한 제피향이 나는 된장국물을 넘겼다.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이다. 이어 연한 자리물회를 한입 물었다. 자리물회는 가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드러웠다. 미리 넣은 제피 특유의 톡쏘는 향이 입에서 퍼졌다. 자리물회는 이 맛이다. 뒤이어 나온 싱싱한 자리구이도 후각을 자극했다.

고등어구이(노르웨이산)도 서비스로 나왔다. 고등어구이만 해도 1만5천원 안팎을 하는 식당들도 있는데 이 동네에선 고등어가 반찬으로 나온다. 한 대표는 “처음에 우리 동네에선 꽁치구이를 반찬으로 내놨다. 제가 고등어구이를 시작했는데 손님들의 호응이 너무 좋았다. 이제는 이 동네 식당들이 다 고등어구이를 내놓는다”고 웃었다.

13일 오전 보목포구 배개머리에서 해녀들이 배에서 내린 물회용 자리들을 손질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조선시대 사화에 연루돼 제주에 유배 왔던 김정(1486∼1521)은 그의 ‘제주풍토록’에서 “물고기는 그물로 혹은 낚시로 낚는데, 바다에 작은 고기류가 여러 종이 있다”(或網得或釣得 海有小漁數種)고 했다. 여기 등장하는 작은 고기류 가운데 하나는 자리이고, 그물은 자리그물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조선시대 중앙정부는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육지로 유망(流亡)하는 제주사람들을 막으려고 조선 인조 7년(1629)부터 순조 29년(1834)년까지 200여년 동안 출륙금지령을 내렸다. 어로 기술의 쇠퇴를 가져왔다.

암흑의 시대, 먼바다로 나갈 수 없었던 제주사람들의 어로활동은 가까운 연안이나 돌 틈에 사는 고기를 잡았다. 자리도 그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자리떼들은 주로 수중 암초가 있는 ‘여’ 위에서 조류를 따라 논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자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우스갯 말도 있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어 잡기 쉬웠다. 보목리에선 주로 남원읍 위미리 해역에 있는 자귀도에서 문섬 해역까지 자리떼를 쫓아다닌다. 4월부터 7월까지 제철인 자리는 8∼9월은 금어기이다. 겨울철에도 보목에선 자리잡는 배가 출어하기 때문에 이곳에선 사철 자리물회를 먹을 수 있다.

돌하르방식당 대표 한동실씨와 아내 정미숙씨. 허호준 기자

“같은 양념을 써도 주방장 손맛에 따라 달라집니다.” 은근히 아내 정미숙(63)씨의 손맛을 자랑했다. 손맛이 중요하다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자리물회를 찾는 좋은 날을 고른다면?” 기자가 물었다. “햇빛이 쨍쨍 나는데 밭에서 일할 때 이 물회 생각이 가장 많이 나요.” 한 대표가 말했다. “바다가 반짝반짝하는 날, 자리에서는 바다 냄새가 나지요. 색감부터 주는 맛이 우리한테 친근하잖아요. 우리 색깔이야.” 시인이 말을 이었다. 소금이 뿌려진 싱싱한 자리구이는 물회에 맛을 더했다.

“가장 기쁠 때는 언제우꽈?” “당연히 매출이 많이 오를 때가 좋주마씸.” 한 대표는 웃으면서 “그리고 손님이 먹고 나가면서 ‘진짜 우리 제주도 맛을 먹고 간다’고 할 때가 기쁘다”고 덧붙였다.

시인이 포구를 나서면서 자리물회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갈중이(갈옷)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밭일하고 나서 씻지 않은 채 먹는 맛!”

“금방 배웠네. 이런 곳은 소문나면 안 될 텐데. 하하하” 김 시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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