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9위인데 한국 직원 없다···목소리 더 내야 할 韓 [ILO 총회를 가다]

세종=양종곤 기자 2024. 6. 14. 14: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정부 분담금 143억···ILO 9위 '무색'
대표자 연설선 우리 노동 상황 평가에 ‘치중'
전쟁·아동···국제 무대 보편 가치에 韓 '침묵'
노동계, 목소리 내지만···'소극' 정부에 한계
ILO 내 한국인 태부족···강경화 전 장관 ‘낙선’
올해 이사회 의장국, 기대감↑···지원이 관건
국제노총과 여러 국제산별노련이 10일(현지시간) 제112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가 열린 스웨스 제네바 내 유엔 건물 앞에서 미얀마 군부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서울경제]

“국제노동기구(ILO) 분담금을 아홉 번째로 내고 있는 국가만큼 ILO와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ILO 총회의 큰 주제였던 가자지구의 노동 실태에 대해 한국이 어떤 입장도 내지 못해 답답합니다.”

112차 ILO 총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현지 ILO 관계자와 총회 참석단 관계자들이 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ILO에 대한 재정 지원 측면에서는 ‘귀빈국’이다. 하지만 국제 노동의 이슈를 주도할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는 ‘변방국’이다. 올해 유력하게 점쳐지는 ILO 이사회 의장국이 되더라도 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의장국은 1년짜리 일장춘몽에 그칠 수 밖에 없다.

14일 고용노동부와 ILO 총회 참석단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는 ILO 회원국 중 9번째(약 2%)로 매년 분담금을 낸다. 정부 예산 기준으로는 14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7% 늘었다. 분담금은 미국(약 20%)이 가장 많이 내고 중국, 일본 등이 뒤를 잇는다.

ILO는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로 회원국만 약 190곳에 달한다. 이 때문에 ILO도 직원이 약 3600명으로 상당한 조직을 갖췄다. 우리나라가 2% 분담금을 낸다면 산술적으로 72명이 직·간접적으로 ILO 업무를 맡아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한국 지원 비율이 1%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ILO에서 한국인 직원은 10명도 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궁여지책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다가 일시 휴직한 인원 몇 몇이 ILO에서 단기 근무를 하는 식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ILO에서 개인기로 버틴다고 볼 수 있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이 가장 고위급으로 ILO 내·외부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다. 현지에서는 ‘제 2 이상헌 국장’으로 평가받을 한국인이 없어 당장 10년 후 ILO 입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112차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고용부 기자단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없이 ILO 회원국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총회는 회원국 노동계, 경영계,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자국 상황뿐만 아니라 국제 노동 사회 이슈를 얼마나 주도하는 능력이 있는지 보일 수 있는 무대다. 하지만 올해도 우리나라 노사정 대표는 대표자 연설을 통해 자국의 노동 상황과 이에 따른 입장 알리기에 주력한 모습이다. 총회 참석단 규모도 30여명에 불과했다. 정부에 비해 재정이 부족한 노사 민간단체는 정부 참석 인원의 절반 수준도 안 됐다. ILO 총회에서 열리는 각종 위원회와 회의, 면담에 참여하기 턱없이 부족한 인원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올해 총회에서 국제 무대 이슈에서 비껴 있었다. 올해 총회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지역인 가자지구의 노동 착취 문제가 ILO 사무총장이 직접 실태를 보고하고 특별 회의를 열만큼 뜨거운 주제였다. 우리나라 노사정 대표 모두 연설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미얀마의 인권 노동 문제도 ILO 총회를 관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동계 대표단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만 현장 집회에 참석하는 등 문제 의식과 연대 의지를 밝혔다.

아동 노동의 보호도 ILO 총회를 달궜지만, 우리나라는 외면했다. 전세계적으로 1억6000만명의 아이들이 노동의 피해자로 추산된다. 이 중 위험한 일을 하는 아동도 7900만명에 달한다. 총회 전부터 아동 노동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ILO의 노력에 대해 총회 참가국들은 공개적으로 지지 발언과 자국의 대책을 이어갔다. 우리나라도 아동노동을 철폐하자는 ILO 138호 협약을 일찌감치 비준했다. 정작 우리나라는 현장실습생 보호 문제로 올해 총회에서 138호 협약 위반을 다툴뻔 했다.

올해는 ILO에서 우리나라의 달라진 역할이 기대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15일쯤 이사회 의장국 여부가 판가름난다. 의장국은 이사회 의장을 배출할 수 있는 국가다. 의장국이 된다면 윤성덕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대사가 1년 간 의장을 맡는다.

단 의장국이 되더라도 우리나라가 ILO와 관련된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여러 원인 중 하나로 ILO를 이끄는 사무총장이 선출직이란 점이 꼽힌다. 선출 조직은 수장에 따라 조직 내부와 조직의 목표가 확 바뀌는 일종의 정치 조직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당장 현지 인력이 부족해 이 ‘정치 지형’을 돌파할 능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ILO 사무총장에 출마했다가 단 2표를 얻고 낙선한 결과와 무관치 않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