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국제민중법정③] "한국, 일본의 사죄 받으려면 미국 먼저 법정에 세워야"

나윤상 2024. 6. 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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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태 변호사·이주연 사회활동가 "미국 제대로 알릴 기회"
"한국인 미국 원폭 피해 입을 이유 없어…미국 사죄받아야"

원폭국제민중법정에 미국을 왜 세워야 하는가에 질문에 최봉태 변호사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에 한국인들이 피해를 입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최 변호사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학살 사건과 같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미국에 당당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최봉태 변호사.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인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미국은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리틀보이'로 인해 45만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을 피해국으로 감싸안으면서 가해국의 오명을 숨겨 주었다. 그런 역사 속에서 지워진 약 10만 명의 조선인 피해자들이 있다. 79년의 세월 속에 잊힌 그들의 명예는 회복할 수 있을까? <더팩트>가 6월 7~8일 일본 히로시마 열린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 현장을 찾아갔다. [편집자주]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원폭국제민중법정 실행위원회는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을 오는 2026년 열리는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부대행사로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히로시마 제2차 국제토론회에 참여한 다국적 교수나 학자들 외 전 세계 10개 단체 이상이 현재 원폭국제민중법정을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원폭국제민중법정의 판결은 구속력이 없어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을 기소해 법정에 서게 하는 것은 요원한 상황으로 보인다.

민중법정이 갖는 의미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전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이면서 현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소속으로 원폭국제민중법정 실행위원이기도 한 최봉태 변호사와 미국인 교포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회활동가 이주연 코리아정책연구소 이사와 함께 짚어봤다.

사진은 평화기념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는 원폭 피해자의 처참한 실상을 담은 사진과 그림. 평화기념자료관 어디에도 조선인 피해자들의 모습과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민중법정의 가치, 무시할 수 없어

제2회 국제토론회 1주제 사회를 맡았던 최봉태 변호사는 "(실제 법정에 가기 전) 민중법정은 가능한 일이다. 민중법정을 연 선례도 많고, 제도권 내에서가 아니라 시민 차원에서 여는 법정이니까 2026년 뉴욕에서는 가능하다"면서 "민중법정을 통해서 주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여론을 환기시키고 발전시켜 미국 법정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현재 한국과 일본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냉전체제로 불안한 동북아에 위치하고 있는 두 나라는 가장 먼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고 비준해야 하는 나라임에도 그러지 않고 있는 문제를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민중법정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 말처럼 민중법정의 선례는 많다.

우선 위안부 문제에 대해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 민중법정으로 열렸고, 2018년에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렸다.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재판의 판결이 국제법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음에도 일본 정부를 움직이게 할 만한 법적 강제력이 없는 한계를 보여줬다.

하지만 베트남 시민평화법정의 경우 이후 2023년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민사 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에 의해 '퐁니⋅퐁넛 마을 학살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던 점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미국 뉴욕에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연 코리아정책 연구소 이사는 미국 정부에 대한 올바른 비판의 시각을 미국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전쟁범죄에 대해 법정에 세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오른쪽이 이주연 코리아정책연구소 이사, 왼쪽은 다니엘 리티커 스위스 로잔대학교 부교수.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미국을 법정에 세워야 하는 이유

전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민중법정에 세우겠다는 계획이 과연 실현 가능할 지를 두고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을 법정에 세워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국제토론회 2주제 사회를 맡았던 이주연 코리아정책연구소 이사는 "미국의 핵 패권주의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받았음에도 그것이 불법적인 일이라고 국제적, 대중적 여론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면서 "미국을 법정에 세워 이 일을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미국 시민에게도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하고, 미국 정부를 올바르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알릴 기회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민중법정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정의 가치 실현에 있어 대중 복지의 본질과 미래 지향적 가치를 잘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면서 "현재 미국 사회는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빈발하고,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의해 전쟁이 행해지고 있다. 군수산업에 의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음을 미국인들에게 알려서 바꾸어 나가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변호사는 "미국 핵무기가 한국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진상규명과 사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전쟁 때 충북에서 일어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학살사건에 대해서 미국 대통령이 사죄한 적이 있다. 일본인 원폭 피해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것은 정치 역학적인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원폭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 그런 점에서라도 미국을 법정에 세워 사죄를 받아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서 본 평화기념공원 . 맨 뒤로 원폭 돔의 모습이 보인다./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일본 전쟁 침략 책임 묻기 위해 미국 원폭 투하 책임 먼저 사죄받아야

민중법정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에 의해 한반도가 해방되었다는 신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냐다. 전후 세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 때문이라고 배웠다. 이 부분에서 한국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지지를 얻기 힘들 수 있다.

최 변호사는 이 부분에 대해 일본 침략전쟁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책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 변호사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이중의 억압체제 아래 있다.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고 또 하나는 한일청구권협정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의 원폭 투하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또한 1965년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은 경제 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의 모든 전쟁 책임을 면제시켜 버린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피해자도 그렇고 한국 피해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콤플렉스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지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현재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인류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이 나서서 미국의 범죄를 밝히는 것이 인류에 대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연 이사는 "한국은 일본과 미국과의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의견에 추종하는 성향이 짙다. 한국이 미국의 원폭 투하 책임을 묻고 사죄를 받아낸다면 한국이 일본의 침략전쟁 사죄를 받아내기가 유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kncfe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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