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지 마, 아파도 버려야 나아갈 수 있어

한겨레 2024. 6. 1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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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의 마음극장 #너를 정리하는 법
넷플릭스 제공
동그란의 마음극장은?

어떤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왜 저기 들어 있나 싶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드러낸 것 같은, 친구에게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이 격주로 마음 속에서 재편집되는 대사, 기억의 영사기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기거하는 집에 15년째 살고 있어요. 매일 사들이는 것에 비하면 내보내는 것은 적어서 아무리 청소를 해도 늘 너저분한 느낌이 든 지가 꽤 오래되었어요. 옷장이며 책장이며 마음먹고 정리를 하다가도 자꾸만 주저앉게 돼요. 평소에는 빈곤하기 그지없던 상상력이 버려야 할 물건의 재활용 방안과 ‘다음에 쓸 일’에 대해서 만큼은 왜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지 알 수 없어요. 오래된 물건이 불러오는 추억에 잠겨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맬 때도 많지요. 곤도 마리에의 그 유명한 조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저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못 되기 때문에 그 시리즈를 볼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걸 보고도 정리를 못 해낼 게 뻔해서요. 마음에 상흔만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어요. 타이의 젊은 감독이 만든 ‘너를 정리하는 법’(나와폰 탐롱라타라닛, 2019).

스웨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진이 말끔한 공간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어떻게 이렇게 집을 미니멀하게 꾸몄을까요?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처음에 진은 30년 가까이 살아온 집에 쌓인 잡동사니들을 어떻게 다 치우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이 울렁거렸어요. 무엇보다도 엄마를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1층의 거실을 2층으로 옮기고 방을 따로 만들어줄 테니 원하는 걸 말하라고 했을 때, 엄마는 버럭 화부터 냈어요. “미니멀이고 나발이고 여긴 내 집이야.” 자기편이라 생각했던 오빠까지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할 때는 정말 힘이 빠졌어요. 단지 집안의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것일 뿐인데 난관이 참 많았어요. 영화는 잡동사니 정리 과정을 다섯 단계에 걸쳐 보여줘요.

넷플릭스 제공

1단계, 목표를 정하고 영감을 얻을 것. 진의 고객이 되어줄 바이어 미팅에서 담당자가 말했죠. 회사에서 진의 작업실을 방문할지도 모른다고요. 그 시기는 연말 지나고 한 달 이내가 될 거였어요. 진은 그때를 목표로 실내 공사를 추진해 나가지요. 당장 물건부터 치워야 하니 진은 오빠와 함께 쇼핑을 가요. 집안의 물건들을 치우려면 청소 도구가 필요하니까요. 청소용품과 쓰레기봉투만 해도 카트를 가득 채우더라고요. 검은 봉지에 고물상이 가져갈 만한 것과 아닌 것만 구분해 내놓으면 될 줄 알았죠. 어릴 적 성적표, 노트, 친구가 준 인형과 선물들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서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는 기억까지도 없어질 것 같았죠. “봉지에 한번 들어가면 사라지고 안 보이는 건 잊히는 거야.” 진은 그렇게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빠의 한 마디에서 거대한 난관이 시작돼요. “피아노는 어떻게 넣을 거야?”

넷플릭스 제공

정리법 2단계는 ‘추억에 잠기지 말 것’인데 물건들이 너무 많은 추억을 불러냈어요. 어릴 적 진의 생일날에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가족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날의 기억을 낡은 사진 한장이 불러냈어요. (이 사진도 짐을 치우다 오빠가 발견한 것이었어요) 검은 봉지도 삼키지 못하는 것이 있고, 토해내는 것이 있었어요. “성적표도 버릴 거야? 너무하네.” 겨우 정리해 내놓은 검은 봉지들을 고물상이 와서 막상 값을 치르고 출발하자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진이 고물상의 오토바이 꽁무니를 뒤쫓아가서 검은 봉지를 모조리 되찾아 와서는 망연자실해 앉아 있던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넷플릭스 제공

정리정돈에 관한 수많은 콘텐츠는 비포 앤 애프터를 비교하며 “짠!” 하는 마술을 보여주잖아요. 정리수납 전문가들은 잡동사니들과 함께 그 사람이 오래 안고 있던 문제들도 사라져서 앞으로의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처럼 말하죠. 집주인도 알러지나 비염이 치유되고 묵은 군살이 쑥 빠진 것처럼 굴어요. 스스로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 전문가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요. 누구도 오래 쌓인 시간의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는 게 왜 어려운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하긴 물건 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다 보면 심리상담을 하다 한세월 보내야 할지도 모르죠.

30년을 살아온 집에 쌓인 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지난한 과정에 마주치는 수많은 감정을 세세히 보여주는 이야기라니. 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생각해내고 영화로 만들어낸 사람들의 재능에 질투심이 일 정도예요. 냉철해질 것(3단계), 흔들리지 말 것(4단계), 더하지 말 것(5단계)의 단계를 거쳐서 뒤돌아보지 말 것(6단계)에 이르기까지 진은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을 분류하고 버리며 수없이 주저하고 망설이고 괴로워하죠. 매번 새롭게 결심하는 힘과 과감히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으니까요. 설레고 반갑고 흐뭇하고 기쁠 때도 있었죠.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러 갔다가 뜻밖의 욕을 먹는가 하면, 오래 묵혀둔 사과의 말을 건네는 용기를 냈다가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결과를 만들기도 해요. 없다고 하면 그만일 지난 시절의 친구들 사진을 기어이 찾아내서 돌려주는 책임감을 발휘하기도 하죠.

사실 물건이든 관계든 감정이든 완전히 정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몇 월 몇 일까지 다 정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도 말이죠. 진이 잡동사니를 정리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전 남자친구가 준 물건을 처리하는 문제였어요. 우체국에 가서 부쳤지만 ‘수취 거부’로 되돌아왔는데 그걸 또 굳이 돌려주느라고 그의 집에 찾아가기까지 해요. 저렇게 힘든 얼굴로 대체 무슨 속셈일까, 싶었어요. 미련이 남아서일 수도 있고 이별을 확인하고 마음을 정리하려는 것일 수도 있죠. 진도 자기가 무슨 마음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그 과정에서 진은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아내요. 남자친구를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은 그로부터 왔다는 것을요. 그에게서 받은 영향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3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정리란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일 거예요.

넷플릭스 제공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의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쓸모없는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기계 같아요. 이 영화를 보는 중에도 자꾸만 옛 기억이 새로워졌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 봄날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마루에 빨랫비누 수십장이 하얀 탑을 이루고 있었어요. 아주 싸한 느낌이어서 가방을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보니 한쪽 벽을 채웠던 만화잡지가 몽땅 사라지고 없었어요. 고물상이 와서 가져갔대요. ‘만화책은 이제 그만’이라는 엄마의 선언이었어요. 학력고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는데 책상 위가 그야말로 미니멀했어요. 고등학교 3년간의 책들이 모두 치워져 있었어요. 혹시 다락으로 옮겼을까 해서 올라가 봤는데 없었어요. 역시 ‘재수는 불가’라는 엄마의 뜻이었어요. 엄마는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의 마디마다 동의 없이 흔적을 버리고 미련을 치웠어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지나왔던 그 시절의 아픈 마디들이 이 영화를 보며 비로소 치유되는 듯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지금도 이 순간을 버리고 잃으면서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누군가를 탓하고 미워하면서 달래왔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깨달을 때,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살아가다 보면 새로움을 맞이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묵은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때가 찾아오지요. (결국 진은 남은 짐을 다 버려달라고 오빠에게 부탁하고 연말연시 휴가를 떠나요. 필요한 건 이미 다 챙겼다면서) 그러고 보면 우리는 최악의 쓰레기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쓰레기통이 되는가 하면 기껏 대신 버려주었는데 왜 마음대로 버렸냐고, 이기적이라고 원망을 듣는 악역을 맡기도 하지요.

어머니가 끌어안고 있던 쓰레기를 대신 버리고, 되돌려 놓으라는 어머니의 악다구니를 외면하고 마침내 집수리를 마친 진. 과거의 시간과 물건들을 정리하는 대역사가 그렇게 해서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어머니가 살아 계신 내내 냉정하고 잔인하다고 욕을 먹는 한편으로, 남은 감정과 기억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걸 알아요.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건 그런 거죠. 차가운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일이죠.

영화가 끝나도 마음이 개운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을 더 채우려는 미련을 버리고 텅 빈 마음이 되기로 했어요. 당신이 주인공이어야 할 시대가 온다면 나는 기꺼이 버려질래요. 당신에게 버려져도 기쁜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갈게요. 나를 뒤돌아보지 말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요.

영화 칼럼니스트 이하영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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