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EU 전기차 고관세 대응 전략은…최종결정까지 넉달 '승부수'
美 관세폭탄 때와 확연히 다른 기류…디리스킹 등 美압박 속 우회로 EU 공들이기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유럽연합(EU)의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고율 상계관세 부과에 대한 중국 반응이 '예상보다' 격하지 않아 주목된다.
고율 상계관세 부과는 비판하면서도 상생을 강조하는 점이 눈에 띈다. EU 조치가 '잠정'인 만큼 '확정' 때 다른 결과를 유도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무엇보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對)중국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일정 수준 손해를 보더라도 EU라는 '우회로'를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최대 관세율 '美 100%p vs EU 38.1%p'…中, 같은 듯 다른 대응
우선 미국과 EU의 중국산 전기차 상계관세율 차이가 큰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EU 모두 중국산 전기차가 당국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했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대응 강도가 다르다.
지난달 14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100% 인상했다. 이로써 최종 관세는 기존 27.5%(최혜국 관세 2.5%에 25% 추가)에서 102.5%(최혜국 관세 2.5%에 100% 추가)로 올랐다.
EU도 8개월에 걸친 반(反)보조금 조사를 바탕으로 지난 12일 중국산 전기차에 17.4%∼38.1%포인트의 잠정적 추가 관세 부과를 결정해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달 4일부터 기존 관세율 10%를 더하면 27.4%∼48.1%의 관세가 부과된다.
EU는 조사에 협조한 비야디(BYD), 지리(Geely), 상하이자동차(SAIC) 등에는 평균 21%p 포인트(p)의 추가 관세율을 적용했고 비협조적이었던 업체엔 38.1%p를 적용했다.
중국산 전기차 EU 수출은 다소 줄 전망이다. 중국 해관총서(세관격)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용 중국산 전기차의 45.1%인 48만2천대가 EU에 수출됐지만, 평균 21%p의 추가 관세로 대EU 수출이 이전 대비 연간 30% 감소할 것이라고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이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선 이 같은 EU의 상계관세 부과율에 대해 '감내'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의 조안나 천 애널리스트는 "(세계 2위의 전기 배터리 생산업체이자 세계 1위 전기차 생산 기업인) BYD는 동종 최고의 수익성을 갖춰 EU의 상계 관세 부담을 흡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JP모건 분석가 닉 라이도 "추가 관세가 있더라도 EU 시장에서 BYD의 전기차 1대당 이익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동일 차종보다 1.5배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런지라 EU의 중국산 전기차 잠정 상계관세 결정 발표 다음 날인 13일 홍콩 주식시장에서 BYD 주가는 8.8% 급등했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의 추이둥수 비서장은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됨에 따라 관세 인상 등의 무역 조치에 직면한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추가 관세 탓에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도 대변인을 통해 EU의 고율 상계관세 부과가 잘못됐다고 비판하면서도 그 수위가 높지 않은 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100%p의 추가 관세를 결정해 발표했을 때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이 나서 "중국의 정상적 경제·무역·과학·기술 활동을 미친 듯이 탄압하는 것에 가깝다"며 "미국 일부 인사가 자기의 단극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이미 이성(理智)을 잃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 것과는 대응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EU 분열이 관건…獨포함 '친중 세력' 결집에 총력
중국은 EU의 이번 조치가 4개월간 잠정적인 것으로, 확정되려면 EU의 차후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친(親)중국 세력을 결집해 오는 11월 27개 회원국의 확정 가결 투표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독일과 스웨덴, 헝가리 등이 주요 타깃이다.
우선 중국과 교역량이 많고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 협력이 공고한 독일은 EU 의 중국산 전기차 고율 관세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중국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
EU의 중국산 전기차 고율 관세 부과 발표 직후 폴커 비싱 독일 교통장관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집행위의 징벌적 관세는 독일 업체와 그들의 대표 제품에 타격을 준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데서도 독일 내 기류가 읽힌다.
중국 지리자동차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볼보를 소유하고 있다.
2017년부터 헝가리에서 공장을 운영해온 BYD는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공장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 헝가리 역시 중국에 우호적이다.
중국은 11월 표결에서 EU의 기존 상계관세 부과 조치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전까지 최종 관세율을 낮추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으로선 EU 회원국 간 분열을 유도해야 이익이 생기는 셈이다.
중국은 전기차 이외에 EU가 태양광 패널·풍력터빈·전동차·의료기기·주석도금 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벌이고 있는 데 대해서도 같은 대응을 하고 있다.
EU 27개 회원국의 대중국 무역 규모와 의존율이 다른 상황에서, 친중 EU 회원국들을 모아 협력을 유도하는 한편 그렇지 않은 회원국들에 대해선 적절한 수단으로 공세를 누그러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자국산 전기차에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는 프랑스에 대해선 지난 1월 5일 프랑스산 코냑을 포함한 수입 브랜디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 바 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인 중국이 EU산을 콕 집어 반덤핑 조사 의지를 흘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은 다양한 EU 대상 보복 조치를 준비하면서도 아직 꺼내지는 않고 있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유럽 전문가인 딩이판은 "중국은 유럽산 자동차, 사치품, 농산물을 표적으로 삼는 등 각양각색의 상계관세 보복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디리스킹 등 美의 포위 압박 받는 中, 우회로 EU에 공들이기
중국이 관세폭탄 방침에도 EU에 강공 대응하지 않는 건 미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전략적 도전자'로 인식한 미국이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대중 십자포화를 쏟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선 우회로 격인 EU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제품은 물론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정책으로 숨통을 조여오는 상황에 EU가 본격적으로 가세하는 걸 막아야 할 처지다.
전기차가 3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EU의 이번 상계관세 부과율이 미국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데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중국은 '강 대 강' 대응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은 EU의 고율 상계관세 부과 조치를 수긍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선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 방점을 두는 듯하다.
미국이 첨단반도체 생산 장비 선두기업인 네덜란드 ASML을 압박해 차세대 극자외선(EUV) 장비 등의 중국 수출을 차단하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선 EU가 디리스킹 정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게 더 충격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도 지난달 3천440억위안(약 64조6천720억원) 규모라는 사상 최대의 3차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하는 등 반도체 굴기에 나섰지만, EU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사면초가로 몰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중국이 EU에 본격적으로 보복을 가하기 보단 보복 조치를 통한 압박 움직임만 내비친 채 '공생 메시지' 발신에 주력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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