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서 시장경제 지켜내자”… 한국 지성들 머리 맞대다
“사회갈등·규제로 성장약화
기후위기 등 난제도 수두룩
공동체 바람직한 미래위해
시장경제 교육 필수화해야”
분명히 실내 공간인데 광장(廣場)이 환하게 펼쳐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 광장에서 한국의 대표적 지성들이 ‘자유시장경제’를 주제로 여섯 시간 동안 집중 토론을 벌였다. 한국 사회에 담론은 사라지고 패악만 남은 듯싶었는데,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를 깊이 있게 모색하는 지성의 광장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13일 서울 앰배서더 풀만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더플랫폼 특별 세미나에서였다. 더플랫폼은 보편적 인권, 정의, 평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영리·비정치 단체이다. 현재 더플랫폼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와 박경서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현병철 한양대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지난 2017년 지식인 담론 장을 만들기 위해 첫 모임을 시작한 후 꾸준히 토론회를 열어왔다. 이날 세미나는 지난해 ‘자유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잇는 것으로, 내년 테마인 ‘복지국가 건설’과도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발전해왔으나 사회갈등, 각종 규제와 정치적 포퓰리즘 만연으로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또 기후재앙, 세계 경제질서의 혼돈, 첨단 기술의 양면성 등의 난제에 직면했습니다.” 더플랫폼 회장인 현병철 교수는 이날 토론회가 우리 공동체의 난제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조동철 KDI 원장은 기조연설에서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적 압력에서 경제적 자유를 보호해야 했는데, 지금은 포퓰리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제도 마련도 중요하지만,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여론 형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는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등 당장 달콤한 정책이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바탕에 깔려있다.
5부에 걸쳐 이뤄진 토론회는 시장경제체제의 본질, 가격규제, 부동산 정책, 디지털 시대의 경쟁 정책, 한국경제의 미래 등을 두루 다뤘다. 김병연(서울대), 이제민(연세대), 민세진(동국대), 김경민(서울대), 김경환(서강대), 이상승(서울대), 이황(고려대), 조장옥(서강대), 김진일(고려대) 교수 등 학계 권위자들이 발제·토론자로 참여했다.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하태형 수원대 특임교수는 최근 의대 정원 확대 갈등과 관련, “정부가 의료수가 통제라는 가격 규제는 풀지 않고 의료인력 확대 카드를 밀어붙여 의료계 반발이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는 “필수 의료인력 부족은 의료수가를 지나치게 낮게 통제한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종합토론에 나선 손병두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상임고문(전 서강대 총장)은 “입법, 사법, 행정을 수행하는 당국자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수호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자유시장경제 교육을 정부 인사와 함께 일반 시민,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수화하자”고 제안했다. 장시간의 토론에도 방청석의 열기가 뜨거웠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덕 전 대법관, 김종량 한양대 이사장, 김황식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전 총리), 윤영각 파빌리온인베스트먼트 회장,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이강덕 한미클럽 회장, 임관빈 전 국방대 총장,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정진택 전 고려대 총장, 조환익 유니슨 회장, 한민구 전 국방장관 등이 이번 세미나에 참석했다. 최근 방송 다큐멘터리를 통해 1970년대에 ‘아침 이슬’의 김민기 씨와 빈민촌에서 야학 활동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진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전 MBC 앵커), 김준규 변호사(전 검찰총장)의 얼굴도 보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 등 기업인도 눈에 띄었다.
더플랫폼 이사인 이경숙 글로벌차세대한인지도자재단 이사장(전 숙명여대 총장)은 “한국 사회 각계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지적인 바탕을 갖춘 분들이 모여서 단순한 사교가 아닌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는 것이 뜻깊다”고 했다. 그는 “40대부터 80대까지의 회원들이 수평적 구조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자유롭게 하며 서로 의견이 다르면 그걸 인정한다”며 “이게 바로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라며 웃었다.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년 뒤 석유서 수영” 하루 800만 배럴씩 남는다는 석유
- “하루 두끼 버릇되면 내일은 못버텨”… 빵 1개로 버티는 노인들[밥 굶는 노인들]
- “멀쩡한 애 입원시키는 사람들” 아동병원 휴진 불참에 의협회장 한 말
- 남편 시한부 판정받자, 그 충격에 3일만에 먼저 아내가…
- “여대생 성관계 후 2년 만에 임원” 머스크 엽기 성추문
- “차라리 죽여줘”…문신남 2000명이 끌려간 이 감옥은?
- “교수와 학생 성관계 안돼”…강력 단속 나선 이 대학
- [속보]“디올백, 샤넬 화장품 제 돈으로 산 것” 서울의소리 기자 경찰 출석
- 지하철서 옆자리 승객에 기대 잠든 채 사진 찍힌 이준석
- ‘정용진 회장 100일’ 하루 앞두고…이마트에브리데이 첫 희망퇴직